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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왕의 귀환 뒤엔 이종범·이대진 ‘형님들의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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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5-5로 맞선 9회 말 KIA 나지완(29번)이 SK 투수 채병용에게서 끝내기 홈런을 날리자 KIA 선수들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고 있다. 12년을 기다린 타이거즈의 통산 10번째 우승이 확정된 순간이다. [연합뉴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이 열린 24일 서울 잠실구장. KIA 타이거즈가 9회 말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SK 와이번스를 6-5로 누르고 우승을 확정짓자 구장을 가득 메운 KIA 팬들은 이종범(39)과 이대진(35)의 이름을 연호했다. 팬들에게 둘은 ‘두 개의 심장’이다. 타이거즈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던 두 선수가 다시 우승을 맛보기까지는 12년이 걸렸다. 은퇴 위기까지 몰렸던 점도 비슷하다. KIA의 통산 10번째 우승이 더욱 값진 이유는 이종범·이대진과 함께 위업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종범, 팬과 함께 울다=이종범은 우승 뒤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강하기만 했던 그도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이종범은 허리 통증으로 이날 오전 병원에 다녀왔다. 그럼에도 경기 출장을 강행한 그는 6번타자로 두 타석을 뛴 뒤 교체됐다. 이종범은 16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결승타 포함, 2안타·3타점을 기록하며 KIA 우승의 초석을 놓았고, 끝까지 후배들을 독려했다.

이종범은 동료와 팬들에게 ‘마음속 MVP’였다. 우승 공식행사가 끝나자 서재응(32)은 싫다는 이종범을 마운드로 끌고 와 동료들과 함께 헹가래쳤다. 이종범은 관중석을 향해 “은퇴하지 않고 뛴 덕분에 다시 우승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팬들은 기쁨과 감사, 감동을 함께 담은 환호로 답했다.

이종범은 지난 2년간 은퇴 압력을 받아왔다. 2007년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며 타율 0.174에 그쳤던 탓이다. 그해 꼴찌까지 추락했던 KIA 구단은 이종범을 은퇴시키면서 세대교체를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이종범 팬클럽 회원 1000명이 돈을 모아 그를 응원하는 신문 광고를 냈다. 팬들의 저항으로 이종범의 은퇴는 보류됐다. 팬들 덕분에 살아난 그는 팬들에게 12년 만의 우승을 선물했다.

1993년 데뷔한 이종범은 그해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며 ‘야구 천재’로 불렸다. 97년 다시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 뒤 이듬해 일본 주니치에 입단했으나 2001년 KIA 창단과 함께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이종범은 올해 철저한 팀배팅을 하면서도 타율 0.273로 부활했다.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 나지완(25)은 “훗날 이종범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모든 KIA 선수들과 팬들도 마찬가지다.


◆이대진, 소리 없는 응원=투수들의 리더는 단연 이대진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은 끝에 오늘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며 웃었다. 이대진은 불펜투수로 한국시리즈 2경기에 나와 2와3분의 2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했다. 팬들에게 그의 피칭은 기록 이상의 감동이었다.

해태의 마지막 에이스인 이대진은 96, 97년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였다. 그러나 이후 어깨 부상에 시달리며 세 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몇 경기 던지다가 통증이 재발하는 일이 반복됐다. 2006년엔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전성기 시절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를 뿌렸지만 지금은 140㎞를 넘지 못한다. 그럼에도 후배들과 팬들은 그를 끔찍하게 아낀다. 전성기가 워낙 화려했고, 그의 부상과 타이거즈의 몰락이 함께 진행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기량으로는 한국시리즈에서 뛰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조범현 감독은 이대진을 엔트리에 포함시켜 우승의 숨은 주역이 되도록 배려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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