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끝난 후 조범현 KIA 감독(왼쪽)이 충암고 재학 시절부터 은사로 모신 김성근 SK 감독을 찾아가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호랑이 굴에 들어오다=타이거즈는 김응용(1983~2000년)·김성한(2001~2004년) 등 강한 리더가 통치했던 팀이다. 대구 출신에 선수 시절 타이거즈와는 인연이 없었던 ‘외지인’ 조 감독이 팀을 쉽게 개혁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는 “KIA에 처음 왔을 때 선수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개인주의가 만연했고, 서로 도우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조 감독은 강하거나 독한 리더로 분류할 수는 없다. 자신부터 선수 시절이 화려하지 못했다. SK 감독(2003~2006년)을 지내면서 우승을 한 것도 아니었다. 대신 실패한 이들을 다독이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법은 잘 알고 있었다. 조 감독은 “KIA 선수들에게 필요한 건 의식 전환”이라며 틈만 나면 선수들과 대화를 나눴다. 선배와 후배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으며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다=조 감독은 SK 시절 정확한 데이터를 근거로 치밀한 전략을 짜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KIA 선수들은 세밀한 플레이가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 조 감독은 이런 차이를 ‘사람’이라는 코드로 메워갔다.
팀 내 최고참 이종범(39)부터 움직였다. 은퇴 위기에 몰렸던 그에게 팀플레이어로 거듭날 것을 강조했다. 경기 중 “저 선수에게 지금 번트를 지시하면 성공할 수 있겠는가”라고 이종범에게 물은 적도 있다. 감독의 권위가 흔들릴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후배들을 속속들이 잘 아는 베테랑의 몫을 인정했다. 어깨가 무거워진 이종범이 스스로 희생하고 팀배팅을 하자 후배들이 따라 배웠다. 그 과정에서 KIA의 응축된 힘이 폭발했다.
조 감독은 “김성근 감독님은 워낙 치밀한 분이다. 어설프게 따라 했다가는 되레 당할 것으로 봤다. 선수들을 믿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KIA는 최종전 9회 말까지 가는 천신만고 끝에 12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쉽게 얻지 못했기에 더욱 값진 열매였다.
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