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낙원씨 검찰발표 의문점] 10억 기부 대가 없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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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우현(金又鉉.65)전 치안본부장이 '카지노 대부' 전낙원(田樂園.72)씨로부터 10억원을 기부받아 박처원(朴處源.72)전 치안감에게 전달했다는 검찰 발표는 여러 대목에서 의문점이 남는다.

우선 田씨가 돈을 건넨 경위가 석연치 않다. 田씨가 17일 오후 측근을 통해 밝힌 경위는 간단하다.

"89년 가을 金씨로부터 경찰의 여러가지 어려운 사정을 들으면서 경찰 발전기금을 기부하도록 요청받았다. 10일후 서울 필동의 한 일식집에서 金씨를 만나 수표로 10억원을 전달했다. "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경찰의 어려운 사정' 이다. 田씨는 말을 아끼고 있으나 金씨가 40년 동안 대공(對共)분야에만 매달리다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사건을 축소하도록 지시한 것과 관련, 구속된 뒤 88년 6월말 불명예 퇴직한 朴전치안감을 위해 기부금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크다.

함남 출신인 田씨에게 대공 수사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손을 벌렸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문 경찰' 이근안씨가 도피생활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됐을 것으로 보인다. 저하된 대공 경찰의 사기 앙양을 위해 경찰총수로서 충분히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이다.

더욱이 87년 朴전치안감이 치안본부 5차장으로 재직할 당시 金씨는 치안본부 4차장(정보담당)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다.

朴전치안감은 문제의 돈을 건네받아 '현대 비교문화 연구소' 를 설립, 소장을 맡아 95년말까지 현직 대공요원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다. 金씨가 많은 '독지가' 가운데 왜 田씨를 점찍었느냐 하는 것도 의문이다.

田씨의 한 측근은 "田씨가 상당히 발이 넓다. 각계각층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라고 귀띔한다. 그는 "권위주의 시대에 기업하는 사람이 정.관계의 청탁을 뿌리치기 힘든 시대적 상황을 이해해달라" 고 덧붙였다. 사업을 하면서 金씨를 알게 됐으며 대가성이 없는 '푼돈' 을 내놓았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89년 당시는 田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파라다이스개발을 국내 굴지의 카지노 운영업체로 도약시킨 시점이다. 그래서 사업상 각종 '편의' 를 얻는 대가로 건넸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田씨가 90년대초 카지노 수익금을 빼돌려 4백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 1백60억원을 포탈한 사실이 95년 검찰조사에서 드러난 만큼 田씨의 초창기 비자금중 일부가 경찰조직에 흘러 들어갔을 개연성이 크다는 얘기가 검찰 주변에서는 떠돌고 있다.

검찰은 田씨가 돈을 건넨 배경과 이 돈의 사용처를 밝히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특히 田씨가 李씨의 도피자금으로 사용될줄 알면서도 거액을 내놓았는지를 밝히는 것이 비호세력의 전모를 밝히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田씨로부터 거액을 끌어당겨 朴전치안감에게 건네준 '金전치안본부장이 4년째 의식불명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어 수사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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