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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이든 西든 우린 다른 게 없소, 그게 웃기는 거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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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04면

스파이와 간첩. 비슷한 뜻인데도 느낌이 다르다. 턱시도 차림에 샴페인 잔을 들고, 액션과 로맨스를 몰고 다니는 게 스파이라면, 간첩은 어떤가. 왠지 칙칙하고 불결해 보이지 않나. 007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남윤호 기자의 추리소설을 쏘다 - 존 르카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스파이 소설을 성인용 판타지로 만든 게 007 시리즈의 이언 플레밍이라면, 그 환상을 와장창 깨트린 건 존 르카레(78)다. 그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1963)는 냉혹한 스파이전을 묵직하게 묘사한 걸작이다.

동독 내의 조직원을 다 잃은 중년의 영국 정보원 알렉 리머스. 그의 마지막 임무는 동독 정보부의 최고 실력자 문트를 제거하는 것. 이때부터 리머스는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사고 쳐서 감옥도 갔다 온다. 지켜보던 동독 스파이들이 그를 포섭해 동독으로 데려간다. 거기서 만난 건 문트를 밟고 올라서려는 동독 정보부의 2인자 피들러. 리머스가 흘려준 정보를 근거로 그는 문트를 반역자로 고발한다.

누가 진짜 런던의 첩자냐를 가리는 청문회, 작품의 클라이맥스다. 연극처럼 이어지는 이 대목, 눈을 뗄 수가 없다. 작가의 역량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문트는 혐의를 벗을 결정적인 증인을 내세운다. 리머스가 의도적으로 무너지고 있을 때 의도하지 않게 사랑하게 된 여인, 리즈였다. 영국 정보부가 그녀에게 생활비를 대줬다는 걸 폭로한 문트는 피들러, 리머스, 리즈를 모조리 반역죄로 옭아 넣는다.

그런데 청문회의 결론은 결말이 아니다. 반전은 이어진다. 리머스는 자신이 실패함으로써 작전이 성공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리고 탈출. 작가가 준비해둔 결말은 독자에게 강렬한 충격을 준다.

베를린 장벽을 넘는 리머스와 리즈. 리머스가 먼저 오른 뒤 팔을 내민다. 그에게 이끌려 장벽을 오르던 리즈가 경비병의 총에 맞는다. 리머스는 탈출을 포기하고 장벽을 도로 내려와 사살당한다. 리머스의 운명적 행동, 그가 보여준 유일한 인간적 행동은 리즈의 곁에서 쓰러지는 것이었다. 이 장면,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책을 덮고 나서야 리즈를 먼저 쏘도록 한 게 문트였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외침에 뭉클해하던 시절, 공산주의는 악이고 자유주의는 선이라 다들 믿었다. 냉전은 선과 악의 대결로 알았다. 하지만 집단의 목적을 위해 소모되는 개인, 이는 동과 서가 똑같다고 르카레는 야유한다.

“당신도 알겠지만, 우리는 조금도 다른 게 없소. 그게 웃기는 거요.”
피들러가 리머스에게 던진 이 말, 얼마나 풍자적인가. 애국? 웃기지 마라. 추악한 스파이의 본성은 다 같은 거다. 그들의 공작은 거대한 모순이다. 리머스, 피들러, 문트, 모두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진실이란 결국 거짓을 감추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 속에서 인간성을 호소하는 리즈에게 리머스는 이렇게 쏘아붙인다.
“스파이를 뭘로 생각하는 거야? 성직자나 성인이나 순교자라도 되는 줄 아나?”
그래도 작가는 리즈의 입을 빌려 동서 양 진영을 싸잡아 비판한다.

“나처럼 이용할 만한 사람에게서 인간성을 끄집어내, 그것을 무기 삼아 남을 해치고 죽이고….”

냉전 시절 이런 메시지는 충격적이었다. 동서 스파이전을 냉혹한 집단의지의 대결로 묘사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1965년 리처드 버튼 주연의 흑백영화로 만들어졌다. 원작의 메시지를 충실히 담아내 극찬을 받았다.

르카레는 동구권에서도 인기가 높다. 97년 런던을 방문한 러시아의 프리마코프 외무장관은 르카레를 만찬에 초대했을 정도다. 그는 옛 소련 시절부터 르카레의 책에 빠져 팬이 됐다고 한다.



추리소설에 재미 붙인 지 꽤 됐다. 매니어는 아니다. 초보자들에게 그 맛을 보이려는 초보자다. 중앙일보 금융증권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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