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을 다국적 기업으로 키우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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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30면

경제 세계화 시대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일구는 일이다. 우리는 세계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세계화가 실현된 이후에 대한 준비는 소홀한 것 같다. 준비 안 된 세계화는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부터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냉정한 정글의 법칙에서 나타나는 승자의 저주다.

성보경의 M&A 칼럼

한국의 국제경쟁력지수는 134개 대상 국가 중에서 10위권을 유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세계화 경제의 주역이 되는 한국의 기업들은 국내시장 규모가 협소해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경쟁력이 없는 부문을 구조조정하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부문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이때도 다양한 인수합병(M&A) 기법이 동원된다. 하지만 기업을 인수하려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기업들 입장에서는 합병을 더 중점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때 쓸 수 있는 M&A 전략이 국가 간 삼각합병(Cross-Border Triangular Merger)이다.

국가 간 삼각합병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를 결정할 수 있는 핵심 기업이 있어야 한다. 한국은 사업성과 재무구조가 건전한 공기업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제3국의 기업과 삼각합병 전략을 실행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공기업을 활용하여 해외 진출을 하면 대부분 유동성과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삼각합병 M&A 전략을 사용하기가 용이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정책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공기업을 무조건 민영화만 할 게 아니라 삼각합병을 통해 거대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심축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는 안정적인 국가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도 된다.

M&A 전략은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경영 및 투자금융 전략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도 삼각합병 전략은 모회사의 자회사가 제3의 회사와 합병하는 경우 모기업의 주식을 제3의 회사 주주에게 지급하고, 이를 통해 모회사가 제3의 회사의 영업과 자산을 흡수하는 합병 방식이기 때문에 세밀한 전략을 필요로 한다.

삼각합병에는 제3의 회사 주주들에게 자회사의 주식을 배정하는 방식과 모회사가 자회사를 설립한 후 자회사를 제3의 회사에 합병시켜, 모회사가 소유한 자회사의 주식을 자회사와 합병한 제3의 회사 주식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방식의 삼각합병은 모회사가 제3의 회사를 직접 합병할 경우 그 회사의 채무까지 승계해야 하지만 자회사를 통하게 되면 자회사에 대한 출자한도 내에서만 위험을 부담하기 때문에 모회사의 위험 부담을 줄이는 한편 대대적인 채무조정 및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합병 위험을 측정하기 어려운 제3국에 진출하는 M&A 기법으로 사용하기에 유용하다.

일본은 이미 삼각합병 방식을 허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수된 일본 기업의 주주들이 현금 대신 외국 모기업의 주식을 받기 때문에 세금을 내기 위해 별도의 현금을 지불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삼각합병에 동의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조세를 유예해주는 정책을 실행하면서 삼각합병도 가능해졌다. 미국의 씨티그룹은 일본 법인을 통해 닛코 코디얼 그룹의 모든 주식을 취득했고, 닛코 코디얼 그룹은 씨티그룹의 자회사로 흡수됐다. 이와 같이 삼각합병은 자회사를 통해 다른 회사를 합병하면서 모회사의 주식을 지급하기 때문에 제3의 회사를 인수하는 별도의 추가비용이 소요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세계가 단일 시장이 되면 거대 규모의 다국적 기업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는 국가의 세수가 줄어들어, 국가의 생존이 어렵게 된다. 수정자본주의가 채택된 이후 각 국가들은 정부 정책에 소요되는 정책 자금을 세금에 의존하는 성향이 높아지고 있으며, 세금의 대부분은 대규모 기업이 부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화가 추진되면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혜택을 가장 많이 주는 국가에 세금의 납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하지만 한국은 기업들에 대한 소모적인 규제가 많고, 행정편의주의가 만연되어 있어 경영활동을 하기가 매우 불편하다. 이 때문에 현재의 상태로 세계화가 추진되면 대규모 기업들의 본사는 한국을 떠날 것이란 우려가 많다. 이런 식으로 대기업들이 떠나 세금 납부가 줄어들면, 정부 역시 재정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세계화를 추진하기에 앞서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거대 다국적 기업을 확보하는 전략을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 정부는 적자재정을 감수해야 하거나 정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공기업을 거대 다국적 기업의 모태로 키울 수 있는 국제적 삼각합병 전략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삼각합병과 같은 M&A 업무는 세계 최고의 경영전략가들이 참여하여 기업 및 국가의 생존을 결정하는 전쟁터와 같기 때문에 탁월한 M&A 전문가를 키워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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