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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미륵세상’ 디자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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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34면

드높은 하늘과 누런 들판이 어울리는 계절, 사람 사는 동네는 축제로 들썩인다. 전국적으로 한 해 1000여 개의 축제가 열린다던가.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도 보기 힘든 축제 공화국이 됐다. 그 축제의 현장이 궁금해 제3회 디자인비엔날레가 열리는 광주광역시를 찾았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문화예술 육성을 위해 아시아문화전당을 세우는 등 국내 어느 도시보다 광주에 더 많이 투자해 왔다. 이번 행사에도 50억원의 예산을 썼다고 한다.

이번 전시의 기획 취지는 ‘의·식·주’같이 일상적인 삶에 밀착된 주제를 중심으로 전통과 시민적 참여를 존중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트렌디한 해외 디자인 조류를 소개하는 데 치중했던 과거의 전시들에 비해 우리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바람직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미숙한 실행이 문제였다. ‘의·식·주·학·락(衣食住學樂)’ 5개의 주제관 중 기획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된 곳은 한글전시관인 학(學)관뿐이었다. 한글에 관한 다양한 시각과 디자인 원천 소스로서 한글을 부각한 점에서 관객의 공감을 얻고 있었다. 주(住) 전시는 소쇄원에 관한 현대적 해석으로 전시장을 가득 메웠지만 조형적 재현에 그친 전시 방식으로 감흥이 잘 일지 않았다. 소쇄원의 정수는 시각보다는 촉각·청각·후각 등의 통감각적 체험과 자연과의 어울림 그 자체인데…. 나머지 의·식·락의 전시들은 굳이 왜 이것들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거대 예산을 쏟아 붓는 문화예술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오늘날, 제대로 된 비평의 장이 없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시 결과에 대한 전문적 평가가 부재하고 행사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세계적인 비엔날레들과 비교할 때 돈을 너무 많이 쓰면서 결과는 동네 잔치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데도 말이다.
특히 시·군·구 단체장들이 앞장서 대규모의 문화예술 행사를 유치하고 양적 성장만을 부추긴 측면이 크다. 문화예술이 독립된 영역으로 서지 못하고 정치와 시장에 예속된 소치다. 언론도 행사 소개나 문화예술의 산업적 측면만을 부각시키는 게 고작이다. 정치와 시장 이전에 사람의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의 고양된 발현이 문화임을 항의해 보지만 듣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문화란 원래 ‘경작하다(cultivate)’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밭을 갈고닦아 풍성하게 하고 그것들이 모인 총체가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비평가·기획자·작가·일반 대중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다. ‘디자인이 뭐냐. 왜 필요한가’라고 물을 때 소신껏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광주 디자인비엔날레에서는 그 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정작 마음을 움직이는 비엔날레는 광주 인근의 운주사(화순군)에 있었다. 1000년 넘은 디자인 보물이 이곳에 조용히 펼쳐져 있다. 운주사는 천불천탑의 전설적인 유적지로 지금은 비록 석탑 17기, 석불 80여 기만 남아 있지만 예술성과 디자인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다른 어느 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석탑과 백성의 염원이 절절이 서려 있는 투박한 석불들이 골짜기를 따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을 구할 미륵불을 고대하며 온 마을 사람이 한마음으로 돌을 다듬고 옮겼으리라. 하늘과 땅과 바람과 돌, 그리고 지상과 영원을 함께 품는 인간의 정신이 혼연일치가 돼 미적 경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오직 하나 된 전체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자 초월이었다. ‘의·식·주·학·락’의 분절적인 사고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다. 전체를 하나로 품으며 더 높고 깊은 차원을 바라보는 디자인, 삶의 디자인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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