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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남편’ 김영균씨 608일간의 순애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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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이젠 통증의 사이사이 찾아오는 평안함을 소중히 여기려 합니다. 웃으며 그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아직 허락되고 있음에 감사하고 그의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내 몸이 사랑스럽습니다. 시간이 영원히 이어질 줄만 알고 충분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충분히 고맙다 말하지 못하고 지나온 시간들을 가슴 아프게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 지금일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보다 행복했습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사랑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영화 ‘국화꽃 향기’ 中 장진영이 연기했던 희재의 대사

청아하고 밝은 햇살이 비치던 9월 1일, 배우 장진영이 세상과 짧았던 인연에 작별을 고했다.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채 말이다. 장진영이 세상을 떠나기 나흘 전, 혼인 신고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김영균씨의 순애보는 영화 같은 현실을 만들었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608일간의 애틋한 사랑, 인연에 관해서.

중년에 찾아온 운명 같은 인연, 그리고 위암 진단, 투병 중 비밀 결혼식…. 배우 장진영의 연인이자 남편인 김영균씨는 비록 그 운명은 되돌릴 수 없겠지만 영혼만큼은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외롭지 않게 연인을 떠나보냈다. 장진영이 떠난 후 그들의 순애보에 대한 관심의 크기만큼 김씨에게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으나 그는 지금껏 인터뷰를 고사해 왔다. 하지만 김영균씨는 “많은 이가 두 사람의 사랑에 감동받고 있다”는 말에 조심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때로는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눈물 짓고, 때로는 연인이 남긴
추억을 되새기며 웃음 짓곤 했다. 30일 동안 김씨를 취재했던 기자와 김씨의 고등학교 동창인 강민석 기자(『중앙 SUNDAY』)가 인터뷰했던 608일의 드라마같은 이야기다.

Theme 1 첫 만남과 인연

스크린을 통해 만났던 장진영은 멋진 배우였다. 평범한 일상에서 만난 장진영은 ‘순수하고 여린 감수성을 지닌 여자였다’고 김씨는 회고한다. 운명처럼 다가온 두 사람의 첫 만남.

장진영씨와 언제 만난 건가요
지난해 1월 처음 만났을 때 내가 42세, 진영이가 36세였어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운명적인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러나 그런 사랑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으며 기다려 왔어요. 다행스럽게도 나는 42세에 그런 사랑이 찾아왔죠.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보긴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요. 진영이가 운명적인 ‘내 사람’이란 확신이 들었어요.

처음 만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네요
날짜를 기억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꼭 1년 뒤인 2009년 1월 23일에 결혼하려 했었거든요. 둘 다 나이가 있으니까 결혼을 전제로 소개를 받았죠. 서로가 호감을 갖고 만난 지 6개월 만에 진영이와 나는 결혼을 약속했어요. 소개받고 나서 진영이와 거의 하루도 떨어져본 적이 없었어요. 나도 그렇고, 진영이도 그렇고 둘 다 첫눈에 반했으니까요. 진영이를 소개해 준 분이 ‘진영이가 남자를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살짝 알려주기도 했어요.

교제 사실을 오랫동안 외부에 알리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진영이가 사람들 눈에 띄는 걸 싫어했어요. 식당에 가도 방으로만 들어갔죠. 진영이를 데리고 친구들이랑 같이 밥 먹기까지 6개월이 걸렸어요. 진영이랑 가까워지려고 못 먹는 술도 많이 마셨답니다.
유명 배우와의 만남이 부담되지는 않았나요
부담스러웠죠. 행여 스캔들 때문에 배우 생활에 지장을 줄까 봐요. 투병 중에는 더더욱 조심스러웠어요. 진영이가 투병 중 연애한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 꺼려했기 때문에요.

우리가 아는 건 영화배우 장진영인데 일상의 진영씨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심각한 상황에서도 우스갯소리를 던질 정도로 유쾌하고 긍정적인 여자였어요. 둘이서 함께 슬픈 영화를 보다가도 ‘우리가 왜 울고 있지?’ 하며 웃었으니까요. 그리고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섬세한 여자였죠. 비가 내리다 반짝 해가 들면 기분이 좋아졌고, 등산을 하다가도 맑은 공기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랑스러운 여자였어요.

Theme 2 힘겨운 투병과 사랑

조용히 사랑을 이어가던 두 사람에게 장진영의 위암 진단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김씨는 “결국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면 마지막 시간만큼은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고 했다.

위암 발병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교제한 지 9개월 정도 됐을 때였어요. 진영이가 어느 순간 위가 자꾸 쓰리고 신물이 넘어온다고 말하기에 종합 검진을 받게 했죠. 그런데 위암 3기 내지 4기라는 거예요. 의사가 “환자 본인한테 통보할까요?”라고 묻기에 ‘충격받아서 안 된다’고 했어요.

진영씨는 자신이 암인 것을 어떻게 알게 됐나요
당시만 해도 나 혼자만 알았지 진영이는 몰랐어요. 진영이가 충격받지 않도록 조금씩 사실을 알게 해주려고 그날 이후 “궤양이 아주 심하니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얼마 후 화보 촬영이 있었고, 그 동안 진영이 일하는 곳에 안 가봤는데 그때는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촬영을 마친 진영이에게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고 얘기해 줬어요. 거기서 얼마나 울었는지…

진영씨의 투병을 지켜보며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진영이는 하늘이 밉다고 했어요. 나 역시 ‘왜 나한테, 진영이한테 이런 시련을 주나’ 원망했어요. 이제야 비로소 반려자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싶고. 암 진단 후 진영이와의 결혼은 ‘끝났구나’란 생각마저 들었어요. 우리 집에서도 진영이와의 결혼은 물 건너간 걸로 생각하고 있었고요. 하지만 어떡하겠어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인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해봐야죠,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살려보자고 다짐했어요.

남자 친구에게 수척해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지 않던가요
체중도 많이 줄고, 항암 치료 때문에 머리도 다 빠졌지만 그래도 진영이는 아름다웠어요. 외출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인터넷 쇼핑으로 예쁜 옷을 사더라고요. 여자로서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싶었던 거겠죠. 그렇게 한 벌, 두 벌 샀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아 못 입는 옷들이 허다했어요.

투병 중엔 두 사람이 어떻게 지냈나요
암 진단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어요. 간호도 하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고, 등산도 다니고 그랬죠. 계속 스케줄을 잡았어요. 진영이가 실의에 빠질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말이에요. 해주고 싶은 것은 다 해주고 싶었어요. 그 선상에서 결혼식도 한 거고요.

진영씨 생일에 프러포즈를 해서 진영씨가 눈물을 쏟았다고 들었어요.
프러포즈는 어떻게 계획한 건가요 진영이가 투병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을 안 만났어요. 아픈 모습을 보여줘서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진영이의 마지막 생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어요. 내 친구들 몇 명과 진영이의 절친한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초대했어요. 진영이가 살던 집 근처에 ‘찬란한 유산’ 드라마를 촬영했던 카페가 있어서 그곳을 예약했죠. 거리도 가깝고, 아담한 정원이 예뻐서요. 낮부터 가서 미니 화분과 초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어요. ‘나의 아내가 되어달라’는 장문의 편지도 미리 써두었고요.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진영이의 손에 어울리는 티파니 반지도 샀어요. 프러포즈할 때 떨리고 설레야 하는데 준비하면서 슬픔이 밀려오더라고요.

Theme 3 결혼, 여행, LA에서 보낸 30일

청혼할 당시, 함께했던 많은 이들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둘만의 결혼식은 미소만 함께했다. 여느 국민 배우의 결혼식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수수하고 순수한 그대로, 그들은 사랑의 맹세를 가슴에 새겼다.

진영씨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결혼식을 올렸잖아요
진영이의 병이 결코 나아지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어요. 이번이 아니면 면사포 씌워줄 기회가 없었죠. 결혼을 선물로 주고 싶었어요. “오래전부터 너와 부부의 연을 맺는 게 내 소원이었어. 이제는 네가 답해 줄래” 하고 청혼했고 결국 결혼하게 된 거예요.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유가 있나요
진영이가 스타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치료차 LA에 갔다가 진영이에게 “너랑 나랑 여기서 결혼식을 하자”고 했어요. 진영이는 “결혼식은 병 다 나았을 때 하면 되잖아”라고 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진영이는 병이 호전되는 줄 알고 희망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여기선 둘만의 특별한 결혼식을 올리고, 나중에 한국에서 다시 하자고 설득했어요.

미국에서의 결혼식은 한국에서 미리 계획한 건가요
청혼을 한 뒤에 결혼식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어요. 미국에서 진영이가 치료를 받는 동안 이곳에서 조용히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아봤죠. 미국 네바다 주에 작은 교회가 있는데 절차가 복잡하지 않고, 예약 후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그곳에서 준비를 했어요.

추모식이 치러지던 날, 유난히 가을 햇살이 따뜻했다. 생전에 그녀를 아꼈던 가족과 지인들이 모여 그녀의 가는 길을 애도했다. 아버지의 추도사가 이어졌는데 "하나밖에 없는 내 딸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미소 짓고 있던 장진영의 영정 사진이 떠나기를 아쉬워하는 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모두들 깜짝 놀라는 사이 김영균씨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연인의 영정 사진을 두 손으로 받아냈다.
이 모습을 본 가족들은 '진영아~' 하며 흐느꼈다.

결혼식은 어떤 풍경이었나요
웨딩드레스 입은 진영이가 참 예뻤죠. 결혼식장에서 드레스와 빨간 장미를 준비해 줬는데 진영이한테 잘 어울렸어요. 다행히 몸이 회복된 상태라 얼굴에 살이 올랐고, 사진도 예쁘게 나왔죠.

Theme 4 마지막 선물 그리고 약속

귀국 후 병세가 악화되는 연인을 지켜보며 그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떠나가는 그녀를 붙잡을 수 없다면 허락된 시간만큼은 소중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연인에게 해준 선물은 혼인 신고였다. 그녀가 가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도록.

귀국한 뒤 진영씨 병세가 악화됐다면서요
미국에서 2주 치료받은 뒤부터 계속 등이 아프다고 했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에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암세포가 뼛속까지 전이가 됐더라고요. 귀국한 뒤부터 암 전이 속도가 빠르게 진행됐어요. 2~3일 간격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죠. 8월 중순쯤 담당 의사가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한국에서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기간이 된 건가요
진영이는 마지막까지도 병세에 대해 정확하게 몰랐어요. 몸이 말을 안 들으니까 이상하다고 짐작만 할 뿐이었죠. 진영이에게 정리할 시간을 줘야 하는 건가, 지금 상황을 알게 되면 충격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어요. 결국 암시를 주기는 했지만 얘기하지는 못했어요. 그게 지금은 후회가 되기도 해요. 진영이가 좋아했던 사람들과 작별 인사도 못 나누고 그렇게 떠나게 해서 말이에요.

혼인 신고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병이 점점 깊어지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죠. 한국에서 정식 결혼을 하고 당당하게 혼인 신고를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허락하질 않았고요. 진영이가 아프다고 혼인 신고를 안 하면 나 자신이 기회를 보는 비겁자가 되는 것 같았어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내 호적(가족관계 등록부)에 올려 ‘가는 길 외롭지 않게 해주는 것’밖에 없다 싶었어요.

혼인 신고를 한 게 알려지면서 오해도 있었어요
진영이를 저렇게 보내면 세상에 진영이와 나의 연결 고리가 없어질 것 같았어요. 혼인 신고를 안 하면 남자 친구였던 사람으로만 남게 되는 거잖아요. 그것뿐이에요.

진영씨에게는 그 사실을 알렸나요
그때 이후 진영이는 상태가 더 나빠졌죠. 잠깐이나마 의식이 돌아왔을 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면서 “저승에서 만나더라도 너랑 부부로 만나고 싶다. 내가 지금까지 너를 지켜줬는데 앞으로 가는 길에도 김영균의 아내로 외롭지 않게 하고 싶다. 이건 내가 널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얘기했더니 진영이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혼인 신고는 둘만 아는 얘기였나요
네. 하지만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3~4일 동안 서류만 들고 다녔죠. 양가 부모님들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요. 특히 진영이 부모님에게는 딸의 호적을 가져오는 거잖아요. 우리 부모님은 결혼한 것조차 몰랐고요. 그때 진영이 부모님들은 딸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어요. 내 손을 붙들고 통곡하신 적도 있죠. 그러나 일단 저질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금요일이 되고 진영이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니까 생각이 굳은 거죠. 만약 진영이가 내일이라도 세상을 떠나면 관공서가 주말에는 일을 안 하니까 영영 혼인 신고할 기회를 잡지 못할 것 같았어요.
결국 김씨는 장진영이 사망하기 나흘 전에 혼인 신고를 했고 두 사람은 법적으로 부부가 됐다. 그는 혼인 신고 후 일부 네티즌의 악의적인 루머에 시달렸다. 장진영의 재산을 노리고 혼인 신고를 했다는 얘기가 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장진영씨 재산과 관련된 모든 권리를 장씨 부모님에게 일임한다”고 발표해 루머를 잠재웠다.

혼인 신고 사실을 나중에 안 양가 반응은 어땠나요
진영이 부모님은 결혼식 올린 걸 알고 계셨어요. 혼인 신고를 하기 전에 진영이 아버님께 말씀도 드렸죠. 아버님은 “말은 고맙지만, 그건 자네한테 너무 미안한 일이네”라며 만류하셨어요. 저희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 봐 결혼식이나 혼인 신고 얘기를 못했어요. 그러다 뒤늦게 빈소에 있던 이튿날에 기사화되면서 알게 되신 거죠. 아침 일찍 아버지한테 전화가 와서는 사실인지 물으셨어요. 충격이 크셨겠죠. 그러고 나서 몇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전화가 와서는 ‘어려운 결정 내렸다’며 이해해 주셨어요.

세상 떠나기 전 병실을 지킬 때 심정은 어땠나요
“진영이만 살려주면 나랑 안 살아도 좋다. 다른 사람이랑 사는 걸 봐도 좋고, 인연이 끊어져도 좋다” 이렇게 기도 많이 했어요. 진영이가 살 수 있게만 해달라고….

진영씨와 나눈 작별 인사가 있나요
세상 떠나기 나흘 전에 입원을 했어요. 진통제를 2~3시간 간격으로 맞아서 의식이 깨어 있는 때가 많지 않았죠. 그때마다 진영이 손을 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어요. 혼인 신고 얘기도 그때 한 거고요. 임종 때는 부모님도 같이 계셔서 말은 못했지만, 진영이도 제 마음을 느꼈을 거예요. 백번 말해도 모자랄 그 마음,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가벼워요. 진영이가 눈을 감았을 때 표정이 너무 온화했어요. 슬픈 마음이야 억누를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되더라고요.

새끼손에 진영씨 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이 화제가 됐어요. 자신과의 어떤 약속을 담은 건가요
입관식 하는 날 새벽에 진영이가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가지러 집에 갔는데, 반지가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웨딩드레스와 함께 반지를 관 속에 넣어주고 싶어서 손가락에 끼고 빈소로 왔죠. 그런데 화장을 하게 되면 반지가 검게 그을리기만 한다고 해서 제가 간직하기로 했어요. 이 반지를 만지고 있으면 진영이의 숨결이 느껴져요. 진영이는 떠났지만 오랫동안 기억해 주고 싶어요. 그곳에서도 외롭지 않도록.

추모관에는 종종 들르나요
진영이 고향이 전주라 아버님이 진영이를 전주로 데려가고 싶어하셨어요. 아버님께 부탁했죠. 자주 들러서 챙길 테니까 멀리 데려가지 말아달라고요. 삼우제 지내고 두세 번 다녀왔어요.

장진영의 남편으로 얼굴과 실명이 모두 알려졌는데요
처음에는 부모님 때문에 걱정이 됐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어쩌겠어요. 오랜 시간 ‘장진영의 남편’으로 기억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부담스럽기보다는 조심스럽죠. 대중들이 기억하는 장진영의 이미지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되니까요.

이런 사랑과 인연을 원망하나요
처음 위암 진단받았을 때는 세상이 원망스러웠어요. 하지만 사랑과 인연을 탓한 적은 없어요. 내 평생 이토록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그게 다름 아닌 진영이라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부부의 연’을 맺은 그는 장진영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줬다. 입관식을 할 때는 결혼식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곱게 덮어주었다. 현실에서 못다한 인연이 원망스럽기는 했지만, 그렇게라도 외롭지 않게 연인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삼우제 때는 가족들에게 결혼식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미국 네바다 주의 조용한 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는 두 사람의 눈빛에는 여느 커플처럼 설렘이 가득했다. 힘든 암 치료를 참아내느라 몸은 조금 수척해졌지만, 장진영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새하얀 미니 웨딩드레스를 입고, 빨간 장미를 들고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장진영의 모습을 보는 가족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故장진영 프러포즈 장면 첫 공개!

연인을 먼저 떠나보낸 그에게 608일간의 사랑은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다. ‘못다 핀 꽃 한 송이’처럼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는 생애 가장 아름답고 순수했던 사랑으로 마지막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지난 6월 14일, 장진영의 생일날 김영균씨가 깜짝 프러포즈하던 자리에 참석했던 지인이 당시 촬영한 사진을 전하면서,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인을 위해 손수 준비했던 감동의 프러포즈, 그리고 비밀 결혼식…. 그녀와 함께했던 추억은 언제나 선명하다.

#마지막 생일일지 모른다

다가올 운명을 예감한 듯 그는 지인들을 불러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촬영지였던 청담동 카페에서 파티를 열었다. 투병 이후 지인들과 거리를 두고 지냈던 그녀를 위해, 어쩌면 마지막 생일이 될지도 모르는 그녀를 위해, 그는 그녀의 절친들을 초대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장진영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는 손수 미니 화분과 초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로맨틱하게 꾸민 정원에서, 친구들 앞에서 편지를 읽으며 프러포즈를 했다. 벅찬 감동에 장진영은 눈시울을 붉혔고, 그 자리에 함께했던 지인들도 눈물을 훔쳤다. 그의 예감대로 프러포즈는 그녀의 마지막 생일 선물이 되었다.

#오래전부터 너와 부부의 연을 맺는 게 소원이었어

두 사람의 결혼은 그에겐 소원이었고, 장진영에게는 ‘선물’이었다. 프러포즈할 때 그는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줬다. 치료차 미국행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건강 상태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결혼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 결혼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조용한 교회, 두 명의 증인,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빨간 장미꽃을 든 그녀, 그는 ‘이 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하고 바랐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식 날, 장진영은 그가 프러포즈할 때 끼워준 반지와 똑같은 반지를 그의 손에 끼워주며 ‘영원’을 약속했다. 그는 지금 사랑의 징표를 두 손가락에 간직하고 있다. 아내의 따뜻한 손길, 애틋한 정을 매순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취재_민은실 기자, 강민석(『중앙 SUNDAY』 기자) 사진_이민희, 김연지(studio l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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