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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장의 장·차관들 터프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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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잘못된 사례 하나가 개밥의 도토리처럼 발생했다.”

지난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만의 환경부 장관의 말이다. 지난 8월 영산강 유역 환경청이 전남 광양만 매립지 붕괴 사건에 대해 국가정보원에 두 차례 e-메일로 보고한 사실에 대해 민주당 김재윤 의원이 “제대로 된 일이냐”고 따지자 이같이 답변했다. 이 장관은 “말단 실무자가 처신법을 몰라 저지른 실수를 장관과 연결시키는 것은 조금 도가 지나친 일”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팔짱을 끼며 “그걸 장관이 챙길 정도면 이 나라 후진국 아니냐”고 반박했다. 그러자 야당 의원들이 격분했고 국감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같은 날 남북 정상회담 추진설에 관심이 집중된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감에선 신각수 외교통상부 차관이 형식적 답변으로 의원들을 자극했다. 그는 질문마다 “파악한 바가 없다” “정보를 입수한 바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답변을 듣던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정부의 유행인 것 같다”고 했다. 박진 위원장도 “평소에 예의가 바르시고 품격이 온화하신 분인데 오늘 공격적으로 하신다”고 지적했다.

국감장에 나오는 장·차관들이 거칠어졌다. 장·차관들의 도발적 언사는 이번 국감의 뚜렷한 트렌드다. 야당의 정치 공세만큼이나 자주 국감 파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에 대해서도 의원들의 원성이 높다. 22일 정무위에 출석한 그는 “정운찬 총리의 겸직 사실이 더 드러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따지는 민주당 김동철 의원을 향해 “그걸 내가 어떻게 답변하느냐. 지난번 인사청문회 때 총리가 다 답변하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 의원들이 잇따라 권 실장의 태도를 문제 삼자 결국 김영선 위원장이 “국민에게 대답한다는 자세로 해주길 부탁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경희대 김민전(학부대학) 교수는 “정부가 힘이 세질수록, 여대야소일수록 국회가 행정부를 자동적으로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겠느냐”며 “국회가 증인들을 불러놓고 소모적 정쟁을 일삼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우습게 보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대 장훈(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감이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한 번의 쇼에 그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며 “국회가 행정부의 문제를 지적한 뒤 시정해 나가는 과정까지 상시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이를 위한 전문인력 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또 “의원들이 상시적인 행정부 감시 기능을 잘하는지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시민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임장혁·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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