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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스포츠] 박승호 포항시장 “유도로 기른 인내심·집중력 인생 밑거름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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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승호(오른쪽) 시장이 업어치기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포항=송봉근 기자]

“요즘 통 운동을 못했어요. 자세 안 나오면 망신인데….”

포항 시내 한 유도장. 멋진 업어치기를 보여달라는 사진기자의 주문에 흰색 도복으로 갈아입은 박승호(52) 포항시장이 자신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박 시장은 호쾌한 업어치기를 해냈다. 스파링 파트너가 돼 수십 차례나 매트에 메다꽂힌 포항시청 유도부 김정만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어휴, 동작이나 힘이 여전하시네요.”

박승호 포항시장은 유도 7단의 고단자다. 그는 포항고와 유도대(현 용인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부상 때문에 올림픽 금메달의 꿈은 접었지만 그는 유도를 통해 체득한 인내심과 배짱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박 시장은 중학 시절 유도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머니께서 ‘사내 대장부는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죠.” 그는 절도와 예의를 중시하는 유도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박 시장이 다니던 중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는 비 오는 날 일부러 밤늦게 그곳을 지나며 담력을 키웠다. 부스럭 소리만 나도 소름이 오싹 끼쳤지만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고함을 지르면서 통과했다고 한다.

박 시장은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장군들을 모셨던 그는 ‘별들이 사는 세상’을 보면서 운동 좀 한다고 거들먹거리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도지면서 제대 뒤 운동을 접게 되자 공부에 몰두했다. 1983년에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공채 직원을 뽑았다. 그는 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 당시 노태우 조직위원장의 비서로 일했다.

유도를 하면서 배운 자신감과 집중력, 그리고 체력은 그 뒤 공부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뒤늦게 공부에 재미를 들여 연세대에서 교육학과 행정학 석사를 받았고, 한국체대 이학박사와 중국사회과학원 법학박사 학위도 따냈다. 중국사회과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는 3000자나 되는 한자를 통째로 외워버렸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는 1년 동안 여관방에 틀어박혀 노트 300매 분량의 예상 문제와 답안을 달달 외웠다. 박 시장은 “그거 별거 아닙니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박 시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올 9월 포항 해변마라톤대회에 참가해 10km를 완주했다. 스킨 스쿠버 실력을 발휘해 형산강 수중 정화 활동도 펼쳤다. 인공암벽 22m를 거뜬히 올라가고, 산악자전거 30km도 가볍게 완주했다. 이에 대해 묻자 또다시 같은 말로 답했다. “그거 별거 아닙니다.”

박 시장은 ‘운동 선수는 머리가 나쁘다’는 편견에 단호히 맞선다. 그는 “운동 선수는 공부할 기회를 일시 박탈당했을 뿐이다. 어떤 종목이든 머리가 나쁘면 절대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포항=정영재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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