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돕는 이교도라 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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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라크에서 피랍된 네팔 민간인 12명이 모두 살해돼 이라크 임시정부가 곤경에 빠졌다. 이번 사건은 이라크 전쟁 이후 발생한 최대 규모의 인질 살해다. 치안회복을 위해 '나자프 대공세'라는 어려운 카드까지 동원했던 이야드 알라위 총리의 임시정부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 불교 신자도 안 돼=안사르 알순나군(軍)이라는 무장단체는 인질 살해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우선 이들 네팔인이 미군을 돕는 세력이라는 점이다. 이라크 내 무장단체들은 올 들어 점령군에 협조하는 모든 기관과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하겠다고 경고해 왔다. 이후 미군에 납품하는 기업 및 운송회사에 근무하는 민간인들이 대거 피랍됐다. 동양인은 물론 이슬람권 민간인도 납치해 이들 중 일부를 살해했다. 화력과 인원 면에서 열세인 미군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작전이 어려워지면서 택한 또 다른 '미군 괴롭히기' 작전이다. 미군의 보급선을 차단하겠다는 얘기다. 이미 터키.요르단.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 등 미군 납품을 담당해온 여러 기업이 이라크 내 사업을 포기한 상태다.

안사르 알순나군 단체는 둘째로 종교적인 이유를 들었다. 인질 살해 장면을 담은 비디오에 담긴 이 단체의 성명은 "무슬림과 싸우고 유대인 및 기독교인들에게 봉사하는 불교 신자 12명을 처형했다"고 발표했다.

또 기독교 '십자군'을 돕는 어떠한 종교인이나 국가도 테러의 대상이 될 것임을 강력히 경고했다. 기독교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다른 종교에까지 확대된 것이다.

6월 말 김선일씨를 피랍 살해한 '일신과 성전' 단체의 주장과 너무나 유사하다. 당시 일신과 성전은 김씨가 점령세력인 미군을 돕는 납품업체의 직원인 한편 기독교 선교를 인생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 충격받은 이라크 임정=이라크 임시정부는 또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3주간 수백명이 사망한 나자프 사태를 26일 겨우 무마하고 예정된 정치일정에 몰두할 준비를 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이탈리아 기자가 살해된 직후 다시 나흘 만에 대규모 외국인 살해 사건이 발생하면서 알라위 정부는 당혹하고 있다. "12명의 인질 중 한명은 참수하고 다른 11명을 뒤에서 총살한 잔인한 방법은 임시정부의 권위를 추락시키기 위한 심리전"이라고 알자지라 방송은 설명했다. 결국 알라위 정부는 다시 '무장단체와의 전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처지가 됐다.

여기에 지난달 20일 피랍된 프랑스인 기자 2명에 대한 살해 위협도 계속되고 있고 아직 20여명의 외국인이 인질로 잡혀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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