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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있는 미국 여성들 탄력근무제 없는 회사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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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백희영 여성부 장관(왼쪽)이 전신애 전 미 차관보의 조언을 꼼꼼히 적고 있다. [김태성 기자]

여성부가 본격적으로 ‘워킹맘 지원 프로젝트’에 나선다. 여성부 백희영 장관은 21일 서울에서 열린 전신애 전 미국 연방 노동부 여성국 차관보와 대담 과정에서 “KT 등 다수의 기업과 ‘일·가정 양립 기업 협약’을 체결하려 준비하고 있다. 재택근무 등 다양한 옵션을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대담은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전 전 차관보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백 장관은 “최근 중앙일보 보도로 워킹맘 관련 정책이 이슈로 떠올랐다”며 미국 사례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각기 두 자녀를 키우며 활발한 사회생활을 펼쳤던 이들의 대화는 자연스레 워킹맘에 대한 정책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다음은 대담 내용 요약.

▶백희영=뵙고 싶었다. 1970년대부터 사회 생활을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려움이 많으셨겠다.

▶전신애=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간 76년에 일을 시작했다. 집안일을 너무 못하니 남편이 ‘다른 일 해보라’며 등을 떠밀더라(웃음). 아이들을 어느 정도 보살필 여유가 있는 시민단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아픈 적이 없고, 학교 가는 걸 좋아해 다행히 크게 힘들진 않았다. 출장을 갈 땐 이웃들 신세를 많이 졌다.

▶백=저도 아이 봐주는 도우미와 어머니·이모 등 주변 분들 도움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학교 다닐 때 더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 힘든 편이다. 워킹맘의 하루하루가 어려움의 연속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많이 보완하고 싶다. 미국에서 세우신 정책을 소개해 달라.

▶전=부시 행정부의 여성 정책 중 대표적인 것이 일-가정 병행을 위한 탄력적 근무제(플렉스 옵션·Flex Option) 장려다. 출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시차 출퇴근제와 주 4일 근무, 재택근무 등을 장려하고, 잘하는 기업들을 찾아 독려했다. 요즘 실력 있는 여성들은 탄력적 근무제가 없는 회사는 안 간다. 그러니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백=설문조사를 하면 우리나라 여성 직장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 역시 유연한 노동 시간 으로 나온다. 여성부도 앞으로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게 탄력적으로 일하는 근로자 ‘퍼플 칼라(Purple Collar·탄력근무자)’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조만간 KT와 ‘일·가정 양립 기업’ 협약을 할 계획인데, 프로그래머 재택 근무 등을 논의하고 있다.

▶전=좋은 생각이다. 미국 여성국도 잘하고 있는 기업들을 꾸준히 발굴해 알렸다. IBM은 특정 직종엔 근무 시간이나 장소를 따지지 않고 자신이 맡은 고객만 관리하게끔 하는 식으로 자율권을 준다. 워킹맘들이 정말 좋아한다. 에스티로더는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 중인 직원이 원하는 경우 집에 컴퓨터와 팩스 등을 설치해 주고, 하루 서너 시간씩 일할 기회를 준다. 물론 월급도 지급한다. 출산 휴가 중에도 감을 잃지 않고 경력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백=우리 여성부도 당장 시행해 보고 싶다. 한국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정책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전=세 가지다. 첫째, 사회가 일하는 여성들을 존중하고 도와야 한다. 둘째,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도 백인 출산율은 1.7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스페인계 이주자들은 3명 정도를 낳는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변해야 한다. 집안일 부담을 줄여 줘야 여성들이 일하면서 아이 낳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단 식단부터 간편하게 바꿔야 한다. 우리 집은 아침에 간단하게 오트밀만 만들어 먹는다. 그것도 각자 만든다(웃음).

정리=임미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퍼플 칼라(Purple Collar)=일과 가정의 조화를 위해 근무 시간과 장소를 탄력적으로 조정해 일하는 근로자. 하지만 정규직으로서 직업 안정과 경력은 보장받는다. 여성부는 퍼플 칼라 적합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발굴·확산시키겠다고 최근 밝혔다.



>>백희영 장관 ● 1950년 서울생 ● 미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대학원 영양과학과 석사, 미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영양학과 박사 ● 서울대 교수(1992~), 대학가정학회장(2002~03), 한국영양학회장(2005)

>>전신애 전 미국 차관보 ● 1943년 일본생 ● 이화여대 영문학과 학사, 미 노스웨스턴 대학원 사회정책 석사 ● 미 일리노이주 노동부 장관(1991~99) , 미 연방 노동부 여성국 담당 차관보(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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