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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주역들 지금은…] 공산권력자들 역사단죄 받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동구 공산주의 몰락의 소용돌이는 숱한 공산주의 권력자들을 가혹한 역사의 심판대에 세웠는가 하면, 새로운 인물들을 역사의 전면으로 나서게 했다.

◇ 사라진 인물〓대표적 인물은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인 에리히 호네커. 61년 베를린 장벽을 주도한 그는 "변화를 받아들이라" 는 고르바초프의 충고를 무시하다 장벽 붕괴 22일 전인 89년 10월 18일 권좌에서 쫓겨났다.

옛 소련으로 피신했으나 탈출 동독인에게 발포한 혐의로 92년 독일로 되돌려 보내졌다. 체포영장 기한만료로 석방되자 93년 칠레로 망명했다 현지에서 간암으로 숨졌다.

호네커의 후계자 에곤 크렌츠(62)는 살인혐의로 기소돼 97년 징역 6년6개월을 선고받은 뒤 항소했으나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 전날인 8일 연방법원에 의해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

크렌츠는 자신에 대한 단죄는 독일 기본법(헌법) 103조의 소급입법 금지조항에 위배된다며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그는 통일 이후 인세수입.TV출연.기고수입 및 연금 등으로 현재 호화주택에서 풍족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34년간 루마니아를 통치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89년 민중이 등을 돌리자 헬기를 타고 국외 탈출을 시도하다 임시정부기구인 구국전선 대원에게 붙잡혀 부인과 함께 크리스마스날에 총살당했다. 폴란드 총리 야루젤스키(76)는 동구에서는 첫 비공산당원 국가수반인 마조비에츠키에게 권력을 넘겨준 후 은거생활에 들어갔지만 노동자 시위를 유혈 진압한 혐의로 96년 공산당 간부 11명과 함께 기소됐다.

헝가리의 임레 포스가이 사회주의노동 당수는 당명을 사회당으로 바꾸는 등 개혁의 주역 역할을 했으나 결국 91년 전국민주동맹을 형성해 당을 뛰쳐나갔다. 그렇지만 헝가리의 정치를 평화적.점진적으로 서구화시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수 구스타프 후사크는 68년 프라하 민주화 운동을 진압한 후 옛 소련과 돈독한 유대를 유지했지만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권좌가 흔들리다 89년 하벨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겼다.

◇ 떠올랐던 인물〓체코슬로바키아의 바츨라프 하벨(63)과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56)가 대표적이다.

68년 '프라하의 봄' 을 계기로 반체제 진영의 지도자로 떠올랐던 하벨은 '벨벳혁명' 이라 불리는 체코의 민주화 변혁을 주도했다. 당시 개혁그룹 '시민포럼' 의 대변인으로 활약하다 89년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민의 절대적 신임으로 연임에 성공했지만 96년 부인과 사별하고 1년도 안돼 17세 연하의 영화배우와 재혼함으로써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80년대 자유노조 '솔리다리노시치' (연대)를 이끌며 폴란드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바웬사는 8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90년 공산주의 몰락 후 첫 폴란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등 그간의 민주화 활동에 대한 보상을 톡톡히 받았다. 95년 재선에 실패한 뒤 지난해 정당을 다시 결성하는 등 재기를 노리고 있으나 재집권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페레스트로이카 구호를 들고 나와 동구변화를 촉발시켰던 미하일 고르바초프(68)전 소련 대통령은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등 최근 정계 복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부인 라이사가 사망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동정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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