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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가 열전] 12. 패트릭 도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영화음악은 필름 편집이 끝난 후 작곡에 착수하는 게 보통이지만 영국 작곡가 패트릭 도일(46)은 로케 현장을 방문해 제작진과 함께 호흡하면서 악상을 떠올리는 편이다. 음악을 맡은 영화에는 한번쯤 단역으로 출연하는 버릇이 있어 도일은 '영화음악계의 앨프리드 히치콕'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근교에서 태어난 그는 스코틀랜드 왕립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전공한 후 87년 르네상스 극단에 입단, '햄릿' 등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배우 겸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2년 후 연극배우 출신 케네스 브래너가 주연.감독한 '헨리 5세' 의 음악을 맡아 영화음악계에 입문했다. 브래너는 도일에게 '구닥다리' 바로크 시대의 악기를 제발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44년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감독한 동명 영화와 비교될 테니 현대적 감각을 살리자는 주문이었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내년부터 베를린필 수석지휘자를 맡는 사이먼 래틀이 버밍엄심포니와 함께 녹음했다. 여기에 나오는 합창곡 '논 노비스 도미네' 는 16세기 영국에서 식사 전에 부르던 돌림노래를 재현한 것. 영화에서 영국병사로 출연해 선창을 맡은 도일은 이 곡으로 89년 이보 노벨로 영화상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도일은 브래너가 감독을 맡아 셰익스피어 원작에 충실했던 4시간짜리 대작 '햄릿' (96년)으로 아카데미 영화음악상 후보에 올랐다. '햄릿' 의 주제가 '평화롭게(In Peace)' 는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불렀다.

찰스 디킨스 원작의 '위대한 유산' (88년), 로맨틱 스릴러 '환생' (91년),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인도차이나' (92년), 이밖에도 '에덴의 탈출' (94년) '프랑스 여인' (95년) 등이 그의 작품이다. '소공녀' (95년)에서는 인도의 라가음악, 바로크 시대의 캐논, 19세기의 빈 왈츠가 함께 등장한다.

또 90년엔 찰스 황태자의 부탁을 받아 엘리자베스 2세의 90회 생신을 축하하는 합창곡 '엉겅퀴와 장미' 를 작곡한 데 이어 최근엔 소니 클래시컬로 출시된 음악동화 '호수 속의 얼굴' 을 작곡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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