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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 멘토 제도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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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 멘토 제도’를 도입하자고 했을 때, 가장 먼저 튀어나온 반론은 남녀 성비가 맞지 않는 상황에서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온 신입사원 집단에서는 남녀 성비가 엇비슷하지만, 중상위 관리직 집단에서는 남성이 많은데, 어떻게 ‘짝’을 맞출 수 있겠느냐는 말이었다.

은근 견제성 발언도 없지 않았다. ‘임원급에서 여성이라고는 유 상무 당신밖에 없는데, 혼자 어떻게 다 감당하려고 하세요~?’ ‘아따 별 걱정을’ 이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쏟아지는 의혹의 눈초리들! 그 눈초리에 담긴 뜻은 이랬다. ‘당신 혹시 여성 후배들을 줄 세워서, 사장 한번 해보시게?’

유 상무는 순간 위축되는 자신을 느꼈지만, 전혀 예상 못했던 바도 아니고, 열심히 제도 도입 당위성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흔히들 여성 신입사원에게는 여성 선배를, 남성 신입사원에게는 여성 선배를 멘토로 붙여주곤 하는데, 실은 여기에 맹점이 많습니다.’ 왜?

‘신입사원들에게 가장 힘든 점 가운데 하나는 다른 성을 가진 상사와 호흡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이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업무상 오류도 의외로 많고요.’

‘여기 계신 여러 남성 임원들께서는 아마 내심 「그래도 남성 부하가 믿을 만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여성 부하들은 아무래도 껄끄러운 부분이 있을 테고, 자주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는 생각도 하실 테고요. 그런데, 그건 엄청난 오햅니다. 서로 성이 다르다 보니, 뇌 구조가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이나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인데 말이죠.’

여기서 설득력을 더하는 차원에서, 본인의 경험을 재빨리 덧붙였다. ‘저도 그 부분이 제일 답답했어요. 여기 계신 부사장님. 지금은 절 가장 잘 이해해주시는 분이시지만, 처음엔 절 무척 불편해 하셨는데, 사실 저도 마찬가지였거든요. 풀리지 않는 것이 있긴 한데, 그게 뭘까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곳이 없어서 답답해했던 경험이 생생합니다.’

‘자. 요즘은 여성 관리자들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 밑에서 일하는 남성 직원들에게는 이런 애로가 없을까요? 아마 적지 않을 겁니다. 왜 우리 과장은 똑 부러지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걸까? 왜 늘 얼버무리듯이 의사를 전달하는 걸까? 왜 그녀는 오늘 아침 회의에서 화를 냈을까? 이런 남성 직원에게는, 직속 여성 상사가 아닌, 또 다른 여성 선배 멘토가 필요한 것이죠.’

열변을 마쳤을 때, 회의장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졌다. 하지만 여성 상사하고 일을 해봤어야지. 모두들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때, ‘이런 문제는 없을까’ 하는 놈 있다. ‘이성 선배를 멘토로 붙여줬을 때 발생할 수 있는...뭐...그런 거 있잖아...그...“

‘네, 압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 하는지. 저도 사실 그 점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인데요. 남성 선배 멘토가 필요해서, 학교 선배였던 전임 부사장님하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요. 이게 이상하게 소문이 나더라고요. 기억나시는 분들도 아마 있을 겁니다. 당시 제가 잠시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지만, 회사 차원에서 양성 멘토 제도를 공식화하지 않으면, 이런 오해가 부담스러워 물어볼 것도 못 물어볼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염려하신 부분은...글쎄요...정말 그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보시는 건 아니겠죠?’

이때 나선 사장님. ‘그래도 성비가 잘 맞지 않는 문제는 해결을 해야 그 제도를 도입하던지 말던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 아냐?’ 그때 그녀가 내놓은 복안은 일단 성비가 엇비슷한 중하위직에서부터 시행하는 것이었다. ‘좋아! 한번 시범적으로 운영해보자고!’

그 회사에서는 요즘 신입사원의 경우에 6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갈 무렵 남녀 각 2명의 선배를 멘토로 지정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지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름 정보를 수집한 뒤에 멘티가 멘토들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곧바로 사장님을 멘토로 지정하는 따위의 속 보이는 선택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직급은 상위와 차상위 선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렇게 제도를 운영하게 되면 당연히 인기 멘토들에게는 많은 후배들이 몰리기 마련인데, 여기에도 조정이 들어간다. 멘토들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받을 수 있게 한 것. 최대 5명까지 받을 수 있는데, 여기에도 양성 제도를 적용해서, 최소한 2명은 다른 성으로 멘티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이성 부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회사로서는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멘티가 많은 멘토들에게는 멘토링 마일리지도 부여하는데, 많은 멘티를 거느린 멘토로서는 가재 잡고 도랑 치는, 다시 말해 근무평정도 잘 받고 네트워크도 강화하는 좋은 기회가 되는 셈이다.

이 제도의 도입에 특히 사내의 ‘건어물녀’들이 열광했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임원들이 많이 걱정을 했지만, 그 후에도 이들 건어물녀들의 운명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는 후문이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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