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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NGO 순례] 1. 연대운동 산실 대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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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내에서 NGO활동이 본격화된 것은 10년 남짓. 민주화 운동 이후부터다. 하지만 빗방울이 모여 내를 이루고, 바다를 만들듯 어느덧 전국 곳곳에 풀뿌리 단체들이 생겨나 왕성한 활동을 통해 사회.국가발전의 힘이 되고 있다. 지역별 NGO 현황과 활약상을 짚어본다.

요즘 대구환경운동연합과 영남자연생태보존회 간부들이 만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둘 다 환경단체인 만큼 평소에도 접촉은 하지만 최근 모임의 성격은 좀 다르다.

대구시가 외국인 관광객.투자자들을 위해 골프장 2~3곳을 달성군 등에 건설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함께 반대운동을 펴기로 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4일 대구환경운동연합.영남자연생태보존회는 공동명의의 성명을 냈다. 대구시청 2층에 설치한 박제 독수리가 환경파괴를 부추긴다며 철거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대구의 시민단체들은 현안이 있을 때마다 힘을 모은다. 이른바 '연대사업' 이다. 평소엔 단체별로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지만 문제가 불거지면 똘똘 뭉친다.

지난해 6월 17일 대구시청 앞 광장. 시민단체의 대표.실무자 2백여명이 머리띠를 동여맨 채 구호를 외쳤다. "버스요금을 내리라" 는 것이었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단체는 대구경실련.대구YMCA.흥사단대구지부.영남자연생태보존회.소비자연맹대구지부 등 41곳이나 됐다.

지난해 2월 9일 버스요금을 올릴 때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버스요금검증위원회에서 '유가(油價)연동제' 에 합의해 놓고도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국 7월 19일 전국 처음으로 일반버스는 10원, 좌석버스는 40원을 내리는 '개가' 를 올렸다.

연대운동의 또다른 결실은 대구시 중구 공평동 중앙초등학교 터를 공원으로 지정한 것. 97년초부터 경실련.YMCA.YWCA.흥사단.영남자연생태보존회.대구환경운동연합 등 10여개 시민단체는 폐교된 중앙초등학교 터를 공원구역으로 만들자는 운동에 나섰다.

이들은 "도심 폐교 터에 고층빌딩이 들어서면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 이라며 대구시교육청 소유의 땅 3천여평을 공원으로 지정토록 대구시에 요구했다. 물론 대구시교육청과 대구시는 펄쩍 뛰었다.

시교육청은 심지어 "땅값 7백여억원을 시민단체가 내라" 며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들은 '시민환경권' '쾌적한 도시건설' 을 내세워 두 기관을 설득했고, 결국 도심 노른자위 땅인 중앙초등학교 터는 올해 초 공원구역으로 지정됐다.

연대사업의 뿌리는 91년 3월 낙동강 페놀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YMCA와 경실련.크리스챤아카데미 등 10여개 단체는 '페놀사태 대책 시민회의' 를 구성하고 사태의 원인.사고처리.대책의 문제점을 짚어나갔다.

결국 오염된 물을 마신 임산부들은 배상을 받아냈고, 오염도 조작 의혹 제기.두산그룹 제품 불매운동 등을 벌여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어 95년 4월 달서구 상인동 대구지하철 도시가스폭발 때도 시민단체들이 나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이들의 '연대운동' 은 큰 힘을 발휘했다.

이처럼 시민단체의 연대가 잘되는 이유는 우선 단체들간의 유대감이다. 단체 이기주의보다 시민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들은 환경.경제.시민의식 등 사안에 따라 힘을 모을 단체를 달리한다. 사안이 중대할수록 많은 단체들이 모인다.

대구환경운동연합 마석훈(馬碩焄)조직부장은 "시민단체마다 평소 관심을 갖는 분야가 있기 때문에 이같은 점에서는 너나 없이 뭉친다" 고 말한다.

또다른 이유로는 '정치적' 인 면이 꼽힌다. "대구가 3공 때부터 6공 때까지 권력자를 배출한 지역 아닙니까. 섣불리 대응을 하기 쉽지 않았지요. 그래서 '연대투쟁' 이 시작된 겁니다. " 대구YMCA 김경민(金敬敏)회원활동부장의 설명이다.

"권력자들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결집된 힘이 필요했다" 는 것이다. 그러나 싸우는 일에만 연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살맛나는 시민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벌이는 사업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담장 허물기다. 대구지역 1백23개 기관.단체모임인 대구사랑운동 시민회의에서 주관하는 사업이지만 실제 일은 회원인 시민단체들이 하고 있다.

이 운동은 지난 5월 YMCA 김경민 회원활동부장이 중구 삼덕동 자신의 단독주택 담을 헐어내면서 시작됐다.

YMCA가 주축이 되고 경실련.흥사단.환경운동연합.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새대구경북시민회의.대구여성회.민족문제연구소 등 12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대구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도시라는 오명을 벗어보자는 취지에서 흔쾌히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담장 허물기는 관공서에서 개인주택까지 급격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벌써 50여곳이 담장을 헐어내 도시 모습을 바꿔 놓고 있다.

지난달 10일 경주에서는 부산시민단체 대표.실무자 50여명과 대구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이 열렸다. 연대운동의 노하우를 배우겠다고 해 마련된 자리였다.

대구사랑운동 시민회의의 사업담당 한수구(韓守九)씨는 "대구은행이 이들의 연대사업을 돕기 위해 '대구사랑 시민카드' 를 만드는 등 기금도 모아지고 있다. 대구의 시민단체 연대는 시민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살맛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며 "앞으로도 이같은 좋은 전통을 살려 나갈 것" 이라고 밝혔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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