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다가온 '인터넷 정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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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의(代議)정치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도 있는 획기적인 인터넷 정치 사이트가 미국에 등장했다.

지난달 30일 개설된 '투표' (vote.com)라는 이름의 이 사이트는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분야의 각 현안에 대해 직접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국회의원과 관계당국에 바로 전달해 정책에 반영토록 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여론파악이라는 점에서는 일반 인터넷 여론조사와 별 차이가 없지만 집계된 결과를 즉각 웹사이트에 공개함은 물론 상.하 양원의 각 의원과 관계부처에 E메일로 전송, 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의원들은 특히 지역구 주민들의 투표 결과를 곧바로 알 수 있어 의회의 각종 청문회와 법안표결에 주민의사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정치참모였던 딕 모리스와 부인 에일린 맥건이 공동개설한 이 사이트는 문을 연 첫날에만 5천여명이 접속해 한표를 행사하는 열기를 보였다.

모리스는 "연말까지 1백만명이 접속할 것" 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여론조사가 보통 1천~2천명을 대상으로 하는 데 비해 1백만명 이상이 상시적으로 투표에 참여한다면 그 잠재적 영향력은 가위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모리스는 "이미 상.하양원 의원 5백35명 전원에게 이같은 계획을 통보해 30명을 제외한 의원들로부터 투표 결과를 E메일로 통보받겠다는 응답을 얻어냈다" 고 밝혔다.

게다가 앞으로 의원들이 의회에서 행한 표결 내용을 사안별로 해당 지역 유권자에게 E메일로 통보할 방침이어서 의원들이 주민의사에 반한 표결을 하기 어렵게 만들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의원들은 물론 정책당국도 인터넷 투표를 통해 확인된 유권자들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모리스의 관측이다.

인터넷 투표는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20~30대 젊은층의 정치참여를 확대하는 한편 각 이익집단의 로비에 휘둘리는 정치행태를 주민의사에 따르는 '깨끗한 정치' 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 정가에서는 인터넷이 이제 정치인들의 홍보나 선거자금을 모으는 정도가 아니라 주민들을 일상적인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직접 민주주의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이 선거로 뽑은 의원과 정부를 통한 대의정치체제 자체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 자리를 인터넷을 통한 여론정치, 즉 인터넷 민주주의가 대신할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김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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