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참을성 결핍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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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5세기부터 영어권(圈)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스트레스' 란 단어는 주로 물리적인 원인으로 인해 생기는 압력이나 거기서 초래되는 긴장상태를 뜻했다. 건축이나 토목에서 흔히 쓰이던 이 용어가 인간이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 혹은 신체적 및 정신적 질환을 일으키는 요소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였다.

스트레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이래 그에 관한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인체에 나쁜 영향을 주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인간이 적절한 기능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양의 스트레스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대개의 동물들도 먹이 등의 문제로 인한 생존경쟁이 치열할 때 인간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로 푼다' 는 점도 흥미롭다. 인간의 경우 스트레스가 생기면 몸 안에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변화가 나타난다고 한다.

호흡.맥박.혈압이 증가하고 체온이 오르면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요소에 대응하기 위해 면역체계는 자동적으로 풀 가동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몇해 전 미국에서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일정한 스트레스를 가했을 때 쥐의 면역세포는 몸 안의 곳곳으로 이동하며 감염상태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을 증진시키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풀어야 한다' 는 이 이론은 그러나 스트레스의 원인이 분명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경우에만 해당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바꿔 말하면 '현대인의 불안' 따위와 같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스트레스에는 이 이론이 적용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 경우 본래의 스트레스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상대적으로 면역체계는 움츠러들어 몸과 마음은 가속적으로 손상된다는 것이다.

청소년들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겠지만 어른들에 비하면 스트레스의 원인은 대체로 분명한 편이다. 주위에서 잘 보살펴주기만 한다면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최근 한 정신과의사의 임상자료에 따르면 지난 96년 이래 소아정신과를 찾는 청소년들은 매년 30~40% 가량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본지 11월 3일자 29면). '참을성 결핍증' 이라는 것이다.

'무조건 귀하게만 키울 게 아니라 좌절이나 갈등도 겪게 해 참을성을 길러 줘야 한다' 는 전문가들의 조언이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어른들이 과연 자녀들의 스트레스에까지 신경을 쓸만한 정신적 여유를 가질 수 있을는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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