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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회사 취업교포 인종차별 못견뎌 자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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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LA지사〓김성태 기자] 미국의 일본계 회사에 근무하던 재미동포가 회사측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다 형사 고발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한인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1일 경찰과 유족 등에 따르면 일본계 화물운송회사인 '닛폰 익스프레스 USA' 에 다니던 李명섭(39)씨가 지난달 29일 로스앤젤레스시 남서부 토런스의 자택 차고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10년전 미국에 이민온 李씨는 5년전부터 이 회사에서 일해왔으나 7월 회사측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협박 등 혐의로 형사 고발당하자 이를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일본인 직장 상사들로부터 모욕적 언사를 들어온 李씨는 회사측에 시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격분, "일본인을 모두 죽이겠다" 고 말했다가 회사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됐다.

李씨가 남긴 일기장에는 "(일본인 상사들이) '한국인들은 음식을 먹고난 뒤 이를 닦지 않아 김치.마늘 냄새가 난다' 는 말을 한다. 이는 한국인에 대한 모독이며 나에 대한 '이지메' 다. 깊은 상처를 받았다" 고 기록돼 있었다.

일기장에는 또 "일본인 직원 한명이 회사돈을 횡령한 사실을 상사에 보고했으나 일본인 상사는 오히려 내가 정직한 일본인을 모함한다는 태도를 보여 심한 굴욕감을 느껴야 했다" 고 적혀 있었다.

일본인 간부들이 '한국사람은 비지니스를 하고나서 돈을 잘 내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 는 등 민족차별적 언사를 서슴지 않고 있다" 는 불평도 있었다.

이와 함께 "(일본인 상사들은) '한국 회사들이 망하고 있다. 미국에 있는 한국회사들도 거의 다 곧 망할 것' 이라고 말하면서 폭소를 터뜨렸다" 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李씨는 지난 7월 중순 해고되자 회사를 상대로 인종차별을 들어 민사소송을 제기, 최근 회사측과 보상에 합의했으나 형사고발 사건이 계속 진행되는 바람에 8월 19일 시민권 선서도 하지 못했다.

李씨의 부인인 일본계 준코(36)씨는 "소송 등 모든 법적 방법을 동원해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명예를 회복하겠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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