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디스가 좋아하는 노선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번 주는 푸켓, 사이판, 세부로 깔았어. 가기 싫어 죽겠어."

이게 뭔 소리? 스튜어디스들끼리 하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쟤들 뭐니"하고 한 번쯤 눈을 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관광객 입장에서야 '환상적'인 코스지만 스튜어디스 입장에선 손님도 많고 아주 힘든 노선이다.

"와인으로 손 씻을 사람!"

먹기도 아까운 와인으로 손을 씻어? 눈 돌아갈 이야기다. 하지만 규칙상 개봉한 와인은 착륙 전에 모두 버리게 돼있다.

평균 10년차 아시아나항공 스튜어디스 8명이 엮은 에세이『스튜어디스 비밀노트』(씨네21북스·정진희 외 지음)에 나와있는 그들만의 은어다.

"시드니 가서 팬케이크 먹고 싶다"는 말은 시드니에 가고 싶다는 뜻이다. 시드니에 있는 한 팬케이크 가게는 승무원 사이에서 맛있기로 소문 나 시드니에 도착한 다음날이면 대부분의 승무원이 이곳으로 팬케이크를 먹으러 간다.


"이대 앞보다 LA 베벌리힐스에서 쇼핑하는 게 더 빠르다"도 이들끼리만 통하는 말이다. 실제로 서울에 있을 동안에 애 엄마들은 집안 일 하랴, 미혼은 연애하고 친구 만나느라 쇼핑하러 나갈 시간이 별로 없다.

책에 나와있지 않은 뒷이야기를 승무원 18년 차인 정진희(41) 사무장으로부터 들어봤다.

- 스튜어디스들이 선호하는 노선과 기피하는 노선이 있다는데.

"태국 방콕은 승무원들이 선호하는 노선 중 하나죠. 싸고 맛있는 먹거리가 많고, 쇼핑몰이나 스파 등 싸면서도 깨끗한 시설이 많아요. 일본 후쿠오카도 인기죠. 제일 짧은 노선으로 기내 서비스가 매우 간단하고, 아침에 출근해 점심시간 약간 지나서 퇴근할 수 있거든요. 미국 LA는 기피 노선입니다. 매번 만석인데다 VIP도 많고 까다로운 승객도 많아요. 낮 비행이라 승객들 요구사항도 많아 비행 내내 분주하지요. "

- 18년 근무 동안 기억에 남는 최악의 손님과 최고의 손님은.

"베트남 호치민 비행 때였어요. 인천공항이 매우 혼잡해서 한 시간 이상을 출발하지 못했죠. 방송을 한 후 승무원들이 일일이 캐빈에 나가 양해말씀을 드렸는데 승객 한 분이 고성을 지르며 매니저를 찾는 거예요.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데 튀는 침을 고스란히 맞으며 10분 이상을 쪼그리고 앉아있었어요. 정말 펑펑 울고 싶었죠. 최고의 승객은 모 대기업 회장님이예요. 가족과 함께 탑승하셨는데 대할 때마다 깍듯이 인사하며 '고맙습니다'를 연발하시는 거예요. 심지어는 화장실을 이용하시다가 우리와 마주쳐도 가볍게 목례를 하셨어요. 저런 분을 회장님으로 모시는 직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했죠."

-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 등 여성으로서 일하기 힘들지 않은지.

"승무원은 처녀 시절에 잠깐 하는 직업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의외로 아줌마 승무원이 많답니다. 기내환경은 아무래도 지상과 다르기 때문에 임신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탑승근무를 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산전 휴직에 들어가죠. 산전·출산·육아 휴직을 합쳐 거의 2년까지 쉴 수 있죠. 무급이긴 하지만 건강하게 아기를 낳고 체력을 회복해서 다시 비행근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 승무원이 여성이기 때문에 근무 여건 상 여성으로서 겪어야 할 불편함이나 애로사항을 같은 여성인 상사가 잘 알고 있어 이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죠."

- 높은 상공에서 일하다 보니 안 좋아진 신체 부위도 있을 텐데.

"지상과 기압이 다르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무리가 옵니다. 기내에서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특성상 허리나 다리 관절이 약해지기 쉽습니다. 제 때 식사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위장을 버릴 수 있죠."

- 승무원이 되기에 가장 중요한 자질은.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첫째, 긍정적인 마인드고 둘째는 잘 웃는 외모입니다. 외국어 능력도 갖춰야죠. "

김진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