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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케언크로스가 펴낸 '거리의 소멸ⓝ디지털 혁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텔레비전은 라디오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앉아서 눈을 화면에 고정시켜야 하는데 미국의 보통 가정은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1939년 '세계박람회'가 개최될 당시 텔레비전에 대해 이런 전망을 내놓았다. 지금도 그런가.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60년이란 시간을 훌쩍 넘은 1999년, 지금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주체는 단연 디지털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수석편집자 프랜시스 케언크로스가 펴낸 '거리의 소멸ⓝ디지털 혁명' (홍석기 옮김. 세종서적.1만3천원)이 관심을 끄는 것은 현재의 관점에서 멀지 않은 미래 변화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기 때문.

아테네의 전설에 나오는 마라톤은 거리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구속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처럼 인간은 수천년 동안 거리에 매여 살아왔고 비로소 20세기에 접어들어서야 고속도로.철도 등 유형의 문물로 구속의 틀을 조금씩 풀어왔다.

그러나 지금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명은 이제 '거리의 소멸' 을 얘기한다. 왜냐하면 모든 길은 디지털로 통하기 때문이다.

케언크로스는 이 책에서 21세기를 앞둔 요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정보통신혁명이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바로 '거리 제약 극복' 의 관점에서 다룬다.

우선 세계 기업활동의 축은 거리에 상관없이 시간대에 따라 아메리카 대륙, 동아시아 및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등 3교대제로 편성되고 거리의 파괴에 따라 전 세계로부터 벤처자본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소기업들도 과거 대기업만이 할 수 있었던 대규모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또 시장 잠재성의 팽창으로 초(超)부자 집단이 등장할 터인데 이는 음악가, 배우, 예술가, 운동선수 등으로 예상되고 개인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이 줄고 집에서 작업하거나 여행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도시는 고용의 중심지에서 오락과 문화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영어는 비즈니스와 거래에서 원격통신의 공동표준어로 등장, 제2모국어로 지구적 역할이 강화되고 오락물의 생산, 유통 비용의 하락과 생산능력 증대로 대규모 자본을 무기로 삼는 할리우드 등이 위축되는 대신 후진국과 소수 민족의 문화 상품이 활성화할 전망이다.

물론 걱정도 없지 않다. 정부와 기업은 개인의 활동을 쉽게 모니터링 할 수 있어 개인의 정체가 노출되는 사생활 침해가 염려되고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기업이 국제적 표준과 네트워크를 장악하도록 내버려 둘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하지만 케언크로스가 내린 미래의 그림은 장밋빛이다. 독재적인 정부는 중국처럼 텔레비전 방영을 통제하고 또한 인터넷을 두려워한다는 예를 통해 디지털화 곧 거리의 소멸은 평화를 위한 강력한 동력이 되며 동시에 국가 권위를 축소시켜 권력의 개인화를 촉진시킨다는 예측이다.

그리고 세계평화를 전망한다. 거리의 벽이 허물어짐에 따라 사람들간의 의견교환이 자유로워지고 사고와 감성이 좀 더 깊이 이해되는 세상, 그것이 세계평화의 신호탄이란 것이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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