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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35. 나는 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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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고음반연구회는 음반수집 취미에서 출발해 음반문헌학과 한국음악 및 공연예술사 정립을 목표로 발전해온 단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일제 치하에서 겪은 기록의 왜곡과 전쟁으로 인한 인멸을 절감했다. 1910년대와 20년대에 일축(日蓄.일본축음기회사의 약칭)조선소리반에 나팔통식으로 녹음된 한국음악은 4백여종인데 이는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미국 빅터사에서 녹음한 분량에도 못미치는 분량이다. 그나마 음반은 기록으로 남아있고 실물은 아직 절반도 찾아내지 못했다.

음향기록 자체가 부실한 것은 그동안 음반의 가치를 무시해왔기 때문이다. 한국고음반연구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왔고 장차 국가기록물 보존차원에서 국립 음향자료관 설립을 주장하고 있다.

회원들은 아마추어들로 시작됐으나 지금은 대학원 석.박사과정 재학생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아마추어와 전문가, 제도권 안팎이 대등하게 만나 조화에 성공한 드문 경우다. 고음반의 수집.연구와 더불어 고음반의 복각 및 음반 제작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매니어의 틀을 벗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우리는 옛명창 이동백을 대학보다 음반매장에서 만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학문적 연구결과는 현재 국악 음반제작에 바로 응용되고 있다. 국악은 음반을 통해 대중과 가장 저렴하고 격조 높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음향기록은 국악은 물론 대중가요.연극.영화.코미디 등 공연문화 전반을 담고 있으므로 음악학은 물론 문학.사회학 등에서 넓은 응용 가치가 있다.

지금까지 비제도권으로 치부하던 다양한 문화를 찾아내고 담론화하는 과정에서 음향자료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최초의 음반도 찾아냈고, 6천5백종에 이르는 유성기 음반의 전목록도 만들었다. 우리는 만나고 싶다.

가령 이미자 음반을 1천장쯤 수집한 분이나 임방울의 수궁가 완창 실황 테이프의 원본을 소장하신 분들을.

배연형 <휘경여중 교사.동국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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