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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카이야 日경제기획청 장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64) 일본 경제기획청 장관은 보수적인 일본 내각에서 '튀는 장관'으로 불린다.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경제 각료들에 대해선 "안이한 생각 좀 버려라"고 직격탄을 날리는가 하면,'정체''침체' 등의 '관청 용어'대신 '바닥을 기는 혼미'라는 직설적 용어를 구사해 관료사회를 뒤흔들어 놓기도 했다.

20년간의 통산성 생활을 마친 뒤 미래학자이자 작가로 변신해 숱한 화제를 뿌려온 그는 지난해 경제기획청 장관에 취임,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를 되살리는 '야전사령관'을 자처하며 1년 남짓 만에 경기를 회복세로 돌려놓았다.그런 만큼 그에 대한 일본인들의 기대도 대단하다.

제2차 한일 각료회의 참석차 제주도를 방문한 사카이야 장관을 24일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만났다.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취임 이후 '일본열도 총 불황' 이란 유행어까지 만들어냈는데 올해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가 내세운 0.5%성장 약속을 지킬 수 있나.

"지난해 7월말 장관 취임 후 일본 경제가 생각보다 나쁜데 솔직히 경악했다. 이후 과감한 정책추진으로 지난해 말 간신히 변화의 태동을 느꼈다. 솔직히 연초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연구소와 기관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했지만 1분기 8%, 연율기준 2분기 0.9%의 성장을 이뤄냈고 3분기도 0.5%정도의 성장이 예상된다. 목표를 충분히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소비와 설비투자는 여전히 침체돼 있는데.

"맞다. 소득이 늘지 않으니 소비도 생각만큼 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지갑의 내용물은 변화가 없지만 지갑의 끈이 조금씩 풀리고 있는 단계로 보면 된다. 설비투자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

-엔고 때문에 경기가 다시 가라앉을 우려는.

"엔고는 미국 증시의 폭락 우려와 일본 경기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반영된 결과다. 자동차회사들은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 비싸지면 10억엔의 손해를 본다고 하지만 이는 수입가격 하락에 의한 이익을 배제하고 수출 손실만 생각한 과장된 것이다. 엔고가 장기적으로 진행되면 문제가 되겠지만 당분간은 큰 위기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론 연간 3천억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문제 해결을 위해 전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일본 입장에서 바람직한 환율 수준은.

"(웃으며)그건 진짜 어려운 문제다. 상대방이 있는 문제이므로…. 미국의 문제, 일본 내 경기

상황, 국제 유가문제 등 복잡하게 얽혀 있어 말하기 힘들다. "

-최근 일본은행이 엔고 저지를 위해 양적 금융완화에 나서겠다고 했는데 그러면 현재 추진 중인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둔화되는 것 아닌가. 그러다 버블이 또 일어날 가능성은.

"일본은행은 일본은행이고 정부는 정부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정부의 가는 길을 충분히 반영해 정책을 취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현재는 버블을 일으키려고 해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니 걱정 안해도 될 듯 싶다. "

-일본 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고용불안 문제가 심각한데.

"현재 실업률 4.7%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나는 사람들이 18~22세에 직장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평생 일한다는 것 자체가 개인의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임금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취향대로 직장을 고를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

-닛산자동차가 최근 발표한 파격적인 구조조정안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일본적 기업문화는 빛이 바랜 것인가.

"상거래 문화 내지는 경제를 놓고 '어떤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다' 라고 단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느 기업이든 필요에 따라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향후 일본 경제에 대한 전망은.

"2001년부터 제2의 전성기가 올 것으로 본다. 99년은 바닥을 다진 해였고, 2000년은 본궤도에 올라서는 해가 될 것이고, 2001년부터는 새로운 지가(知價)사회를 열며 크게 부활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각급 학교에 대한 인터넷 보급 등 모든 지혜를 집중시켜 나갈 계획이다. "

-최근 미국 증시가 큰 폭으로 떨어졌었는데 앞으로의 미국 경제 전망과 파급효과는.

"지난 17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동아시아 경제포럼에서 많은 참석자들이 이를 걱정했다. 개인적으론 미 재정규모가 대규모 흑자이고 경제지표가 좋아 미 경제는 당초 의도대로 연착륙에 성공할 것으로 본다. 다우지수는 9, 000~12, 000사이를 유지할 것으로 본다. "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 비판적인데.

"아시아적 가치란 뭔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아시아적 가치가 유교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지만 2천5백년 유교 역사에서 유교적 사고가 경제에 플러스가 된 때도 있지만 마이너스가 된 때도 있었다. 무어라고 단정해 말할 수 없다. "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하며 외국자본에 문을 걸어잠근 말레이시아나 외국자본을 적극 유치한 한국이나 결과적으론 모두 성공했는데.

"말레이시아는 마하티르가 독특한 카리스마를 지닌 나라로, 특수상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한국 등 금융위기를 겪은 아시아 각국의 회복상과 구조조정에 대한 평가는.

"무엇보다 각국의 합리적 금융체제 확립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과감한 재벌해체와 금융기관의 정리.통합을 하고 있는데, 이는 피할 수 없었다고 본다. "

-최근 오마에 겐이치씨가 한국의 경제극복은 요원하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근본적으로 한국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먼저 재벌해체를 김대중 대통령의 큰 실패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은 1백만개의 중소기업이 있지만 제조업은 불과 20만개밖에 안된다. 그리고 이들은 재벌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중간소재.부품 업체의 기술발전을 막고 있는 것이다.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현 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오마에는 간과하고 있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닛산도 하청업체수를 1천8백개에서 6백개 정도로 줄인다고 하는데 이것을 이겨내 남는 기업이 비로소 기술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다. "

-한.일간 실현 가능한 경제협력분야는.

"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98년부터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의 한국 투자가 부진했던 것은 일본 자체가 불황이었고 한국의 경제부활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늦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일본 기업들의 한국 투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본다. "

제주〓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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