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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의 고민] 금융불안 불끄기 바빠 금리·물가정책 손못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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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물가관리는 외면한 채 금융시장 안정의 깃발을 언제까지 걸고 있어야 하나' .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통화신용정책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목표를 갖는 한국은행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한은은 빠른 경기회복 속도에다 원유가격 등이 급등하면서 인플레에 대한 사전적 대응을 검토해야할 시점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금융시장 불안이라는 급한 불이 발등에 붙어 있어 이 불부터 꺼놓고 봐야 한다는 좌표를 분명히 했지만, 여전히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한은은 지난 7일 10월 중 통화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내년 이후에 물가상승 압력이 나타나면서 물가상승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한은은 "금융시장 불안심리가 높은 반면 물가는 현재까지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금융시장 안정에 중점을 두겠다" 고 확실히 못박았다.

한은 관계자들은 최근 "빨리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통화정책을 수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면 대우사태가 해결되고 금융시장이 평정을 되찾으면 한은은 통화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까.

한은의 대체적 흐름은 인플레 압력을 낮춘다는 게 기본방향이지만 그렇다고 당장 금리를 올린다거나 시장을 놀라게 하는 정책을 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가를 잡겠다고 섣불리 금리인상의 칼을 뽑았다가 물가는 잡더라도 경기를 침체에 빠뜨리는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시장이 안정된 후 그 상황에서 인플레 압력의 강도와 지방 경기회복 정도까지 따져보면서 신중하고 책임있게 행동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금리인상 조치를 단행하기 전에 더 많은 인플레 증거를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며 "무조건 금리를 안올린다는 게 아니라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것" 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금융시장이 안정되더라도 금리인상은 점진적인 단계를 밟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우사태가 해결되면서 주가가 급등하고 부동산 값이 들먹이며 물가 오름세가 분명히 나타난다면 곧바로 긴축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은 관계자는 말했다.

올들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인하 정책을 취한 한은의 입장은 지난 5월 통화신용정책을 발표하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한은은 당시 증시 급등 등을 우려해 "단기금리를 현수준으로 유지하며 중장기 금리상승을 용인한다" 며 처음 경계경보를 울렸다.

6월과 7월초에도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타나자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펴겠다며 마치 금리인상이라는 칼집에 손을 갖다 대고 시기를 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7월 하순 대우사태가 불거지자 금융시장 안정 쪽으로 돌아섰고 10월 통화정책을 발표할 때는 발표문에서 '선제적인' 이라는 표현마저 빼버렸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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