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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 무차별 포격 배경] '체첸 직할통치' 러시아군 강경선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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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로즈니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이 격화되면서 체첸을 침공한 러시아군의 최종 목표가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 일고 있다.

러시아군이 당초 목표로 내걸었던 '테러리스트 박멸 및 안전지대 확보' 에서 한걸음 나아가 체첸 정부 전복 및 직할통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21일의 사태는 지금까지 러시아군과 체첸군이 포격과 폭격 후 별다른 지상전 없이 민간인이 많이 살지 않는 체첸 동부 및 북부 지역을 내주고 접수하는 식으로 진행됐던 전쟁과 판이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러시아군은 이날 체첸 대통령궁을 중심으로 한 반경 1백m 이내 지점을 향해 모두 6발의 미사일 공격을 감행해 수백명을 사상케 했다. 물론 러시아군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오히려 헬싱키에서 열리는 러-유럽연합(EU) 수뇌급 회의에서 러시아를 궁지로 몰려는 음모설이라는 주장도 펼친다.

그러나 현지 취재기자들이나 체첸쪽의 주장은 명백히 러시아군의 공격이라고 전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공격은 94년 2월 그로즈니에 대한 러시아군의 진격을 앞두고 공습과 폭격으로 그로즈니를 초토화했던 전례를 상기시킨다고 말한다.

특히 지난 21일 러시아 당국이 모스크바의 체첸대표부 대표 마이르박 바차가예프를 체포하고 그의 아파트를 집중 수색한 것도 마스하도프 정부에 대한 절연과 최후 통첩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물론 러시아 정부는 이미 마스하도프 정부 대신 96년에 선출됐던 친러 체첸 의회와 친러 꼭두각시 망명정부만을 법적으로 인정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마스하도프가 테러 용의자인 바샤예프를 러시아군 진격에 맞춰 동부전선 사령관으로 임명한 데 따른 대응책이었다는 게 관측통들의 분석이었다.

체첸내 강경파와 온건파를 분열시켜 러시아와의 협상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격으로 민간인들이 다수 희생된데 대한 서방측의 우려도 적지 않다. 당장 인권단체들은 헬싱키의 러-EU 고위급 회의에서 이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룰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유럽안보협력회의(OSCE)도 러시아군의 자제와 협상중재를 표명했다. 러시아 지도부 내의 분열도 관심거리다. 이고르 세르게예프 국방장관 등 온건파는 그로즈니 진주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토도로프 차관.이바쇼프 장군 등 강경파는 겨울이 닥치기 전에 그로즈니를 점령하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박멸하는 것만이 러시아의 안전과 작전의 성공적인 종결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코소보에 대한 러시아군의 전격 진주를 추진했던 세력들이다. 21일의 공격은 과연 누가 이번 체첸 작전의 최종 계획과 지휘권을 갖고 있느냐는 의문과 함께 옐친의 통제력 상실에 대한 우려를 증대시키고 있다.

모스크바〓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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