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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대문 형무소에서 '민족문화예술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털을 쭈삣쭈삣 서게 만드는 서늘한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가을밤 형무소의 붉은 벽돌 앞에 앉아 공연을 보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쉽게 맛볼 수 없는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독립운동의 역사적 상징물인 옛 서대문 형무소 자리에서 11월 5~7일 펼쳐지는 '제1회 서대문형무소 민족문화예술제' 가 바로 그것이다.

형무소가 거대한 문화공간화하는 이 자리에는 과연 어떤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02-363-0256. 지난해 역사관이 들어서고 일반에 공개된 이래 간간히 음악회같은 문화행사가 열린 적은 있지만 이번 행사는 그것과는 다르다.

단순히 장소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이 갖고 있는 역사적 상징을 문화적으로 재창조하고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서대문형무소 민족문화예술제 주최로 열리는 이번 예술제 하이라이트는 예술제 기간동안 매일 오후 7시 시작하는 총체극 '벽, 안과 밖' 이다.

가을밤 옥사(獄舍)와 옥사 사이의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시인 황지우씨가 대본을 쓰고 무대미술가 윤정섭씨가 연출을 맡았다.

조선시대 이래로 형장과 형무소터로 쓰이며 수많은 원혼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이니만큼 널린 혼들을 불러모아 이 터에서 놀게 하며 위로해서 다시 보내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혼이라고 하면 흔히 살풀이같은 것을 떠올리지만 이번 공연은 서대문형무소의 상징을 아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점이 특징이다.

야외, 특히 옥사가 널린 형무소라는 환경의 특이함과 16명의 배우들이 야외무대와 감옥 안을 오가면서 펼쳐지는 그림, 대사가 아닌 소리로 이루어진 보이스 퍼포먼스 등이 새로운 형식으로 다가온다.

탤런트 최불암씨가 내레이터로 특별출연한다.

또 이 총체극안에는 일본 무용가 아리사카가 안무한 한일 합동무용 '벽.물질' 과 이광수 연출의 '상여소리' 등 별개의 공연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한데 어우러진다.

한편 총체극과 함께 펼쳐지는 전시도 눈길을 끈다. 설치미술가 임옥상씨가 기획하는 전시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옥사 안의 방 28개를 이용한 설치미술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옥사 맞은 편에 있는 역사관 한 벽면에 높이 10m, 길이 14m의 대형 걸개그림을 거는 것이다.

또 마지막으로 이곳의 역사를 아는 사형장터 입구의 미루나무에다 망자들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순국선열들의 이름을 적은 리본을 가지마다 거는 작업도 있다.

이밖에도 유진규네 마임팀의 '잊혀져 가는 역사를 재조명하는 마임극' 과 이광수 사물놀이패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이 행사를 기획한 아름아시아의 고직만씨는 "항일운동의 상징성을 지닌 이 장소가 지닌 매력에 이끌렸다" 며 "앞으로 행사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갈 것" 이라고 밝혔다.

과연 서대문형무소가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처럼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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