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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신호에 즉각 손절매해야 깡통 면한다”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개미투자자가 증시에서 경험하는 최악의 상황은 자신이 투자한 종목이 상장 폐지되는 것이다. 그 순간 휴지조각이 된다. 이런 종목이 올해에만 75곳이다. 전후 경기 상황을 감안하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상폐를 쥐지 않는’ 예방법을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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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에 소액주주 피해자 모임이 넘쳐나고 있다. 상장 폐지된 기업이 급증하면서다. 올해만 10월 8일 기준으로 75개사가 상장 폐지됐다. 2000년 이후 가장 많고, 작년보다는 3배나 늘었다. 자진 상장 폐지를 신청한 곳과 피흡수 합병된 11곳을 제외한 64곳의 주식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올해 상장 폐지된 75개사 분석해보니… #만성 적자·경영권 변경 등 ‘주의’ … #감사의견 거절로 인한 ‘퇴출’ 급증

불황 후폭풍이겠거니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다. 올해 증시에서 쫓겨난 기업들은 대부분 ‘퇴출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이사는 회사 돈을 횡령하고, 공시를 속이고, 장사는 몇 년째 적자를 보고, 자본은 바닥나고, 무리하게 돈을 끌어다 쓰고, 외부 감사를 거절당한 곳이 대부분이다.

투자자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봤다. 가장 최근 상장 폐지된 아이드림만 봐도 그렇다. 자본이 50% 이상 잠식돼 관리종목에 지정된 후, 반기 감사의견 거절로 지난 9월 23일 상장 폐지가 결정된 아이드림의 주가는 일주일 간의 정리매매 기간 동안 98% 폭락했다. 폐지 결정 당시 1145원 하던 주식은 20원이 됐다.

마찬가지로 상장이 폐지된 제네시스알엔디의 주가는 같은 기간 96% 떨어졌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상폐가 결정되면 7영업일 동안 투자자가 주식을 처분할 수 있는 정리매매 기간을 주는데, 대부분 90% 이상 폭락한다”고 말했다. 증시 퇴출기업 급증은 사실 올 초부터 예상됐던 일이었다.

2007년부터 한국거래소가 도입한 상장 폐지 실질심사제도 강화와 금융위기에 따른 한계기업 속출로 상장 폐지되는 기업에 대한 투자 주의보는 계속 있어왔다. 지난 4월 금융감독원은 ‘상장 폐지사유 발생 기업의 특징과 시사점’이라는 이례적인 보고서까지 냈었다.

반복되는 퇴출의 패턴

금감원이 올 4월 1일 이전에 상장 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 64곳을 분석한 결과, 두드러진 공통점이 있었다. 먼저 재무구조가 취약했다. 64곳 중 54곳이 당기 순손실을 봤고, 2년 연속 적자인 곳은 47곳이었다.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였고, 유상증자를 통해 현금을 조달하는 곳이 많았다.

특히 15개 기업은 조달한 자금을 영업과 무관한 타법인 주식 취득이나 자금 대여 등에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횡령이 자주 발생했다. 최대주주가 자주 바뀌거나, 불공정거래 혐의에 연루된 곳이 많았다는 것도 특징이었다. 상장 폐지 사유가 발생한 64곳 중 70%가 최대주주가 1회 이상 변경됐고, 이 중 11곳은 세 번 이상 바뀌었다.

시세조정 등 불공정거래 혐의에 연루된 곳은 52개사에 달했다. 횡령이나 배임 사건이 발생한 곳은 절반이 넘었다. 금감원이 ‘이런 종목을 조심하라’는 차원에서 이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문제가 있어 상장 폐지된 곳은 62곳이었다. 그렇다면, 이들 기업은 왜 퇴출당했을까?

이코노미스트가 올해 상장 폐지된 기업의 특징을 살펴보니, 금감원 보고서 그대로였다. 폐지 사유와 원인이 거의 같았다. 표면적인 폐지 사유는 자본잠식과 감사의견 거절, 기업의 계속성과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돼 한국거래소 실질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퇴출당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대규모 손실을 입거나(KIKO), 사업보고서 미제출, 최종 부도로 인해 퇴출된 곳도 있었다. 그렇다면, 퇴출 기업들은 왜 이런 상황에 몰렸을까? 한 기업의 예를 들어보자. 코스닥 상장사인 D사. 이 회사는 지난 9월 23일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로부터 자본잠식률 50% 이상 사유로 관리종목 지정 후 반기 감사의견 부적정 판정을 받아 상장 폐지가 결정됐다(회사는 상폐 결정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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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상장 폐지 기업의 공통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 2년간 수차례 최대주주가 바뀐 D사는 지난해 11월 전 대표이사가 공금 13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12월에는 유상증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D사 경영진으로부터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금융감독원 3급과 4급 직원이 구속됐다.

회사는 또한 지난 8월 공시불성실법인으로 지정됐었다. 재무 상태도 엉망이다. 2005년 상장 당시 700억원대였던 매출액은 지난해 280억원이었고, 당기순손실이 800억원이었다. 3년 연속 적자 상태였으며 올 상반기 매출은 1억70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올 초에는 느닷없이 기존 사업과 상관없는 태양광발전 사업에 진출한다는 공시도 했다.

횡령과 배임, 불성실공시, 최대주주와 대표이사의 잦은 변경, 대규모 자금의 잦은 조달 시도, 빈번한 사업목적 변경은 상장 폐지 기업의 공통점이었다.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KIND)에 따르면 10월 9일 이전 1년간 ‘횡령·배임’ 관련 공시를 한 곳은 147곳인데, 올해 퇴출당한 기업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

한 예로 지난 6월 한국거래소 실질심사를 통해 퇴출당한 트리니티의 경우 지난 2년간 관련 공시가 무려 6회였다. 이 회사는 같은 기간 동안 최대주주가 네 번, 대표이사가 여덟 번 바뀐 곳이다. 상장 폐지된 하이럭스, 이노블루 등은 다섯 차례나 횡령 및 배임 사건이 발생했던 곳이다.

또한 올해 상장 폐지된 기업 중 절반은 지난 2년간 최소 네 차례 이상 경영진이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 폐지 직전 유상증자, 전환사채(CB) 및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이 많았다는 점, 예외 없이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된 경험이 있었다는 것 역시 공통점이었다.

상장 폐지 기업 더 늘어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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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개미투자자들이 되새겨야 할 점은 이들 상장 폐지 기업에 일찌감치 ‘퇴출의 시그널’이 있었다는 점이다. 올 3월 31일, 2008년 사업보고서가 마감된 후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12개 기업 중 11개 기업은 한 달 이내에 모두 상장 폐지됐다.

유일하게 재감사를 받아 ‘감사의견 적정’ 보고서를 제출해 퇴출을 모면했던 U사의 경우 지난 8월 자본잠식 50% 이상, 자기자본 10억원 미만, 반기검토의견 거절 등으로 관리종목에 지정된 상태다. 이 회사는 이후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주가가 큰 폭으로 변동하고 있다.

또한, 당시 계속기업 불확실성으로 감사 의견 ‘비적정’을 받은 17개사 중 삼성수산, 자강, ST&I 등 상당수가 결국 상장 폐지됐다. 또한 상장 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검토됐던 기업 18곳 중 절반 정도가 실제 상장이 폐지됐다. 또한 간신히 퇴출을 면한 기업 중 대부분이 이후 유상증자나 BW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끌어모으고, 사명을 바꾸는 등 생존의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살아남기 힘든 상태다.

지난 1년간의 추세대로라면 상장 폐지 기업은 더 늘어날 것이다. 내년 4월 감사의견 거절이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것도 사실이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코스피 140곳, 코스닥 350곳이 적자 상태다. 코스닥에서만 118개 회사의 최대주주가 변경됐고, 이 중 2회 이상 변경된 곳은 26개사다.

올 들어 90건의 횡령·배임 공시가 있었고, 60곳이 최소한의 원칙인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70곳은 관리종목에 편입돼 있고, 이 중 10곳은 현재 거래정지 상태다.

시장은 계속해서 ‘상폐의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면, 손에 남는 것은 몇 십원짜리 휴지조각이다. 어느 날 자신이 투자한 종목이 HTS(홈트레이딩시스템)에서 사라지는 낭패를 면하려면 ‘전과자의 패턴’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김태윤 기자·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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