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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산업 파트너들 끝없는 소모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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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최근 산업현장에서 업체 간 갈등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원자재 값 상승, 고유가 등 외부 악재까지 겹치자 서로 부담을 상대편에 떠넘기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밀리면 죽는다." 현재 유화업계와 화섬업계, 완성차 업계와 주물업계, 카드사와 유통업계가 수수료.납품가 등을 둘러싸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 중이다. 이들은 대부분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납품 중단 등 '극약 처방'까지 고려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이 더 커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 화섬-정유.유화업계=이원호 한국화섬협회장은 지난 24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했다. 이 회장은 "정유.유화업계가 유가상승분 이상으로 과도하게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며 "화섬업계가 중국과의 경쟁으로 총체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고려해 유화업계가 가격을 내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이어 "유화업계가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공정위에 제소할 것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화섬협회 측은 "올 상반기 중 원유 평균가격은 지난해 동기 대비 15.6% 오른 반면 화섬의 원재료인 파라자일렌(PX)과 에틸렌글리콜(EG)은 각각 20.8%와 16.5%로 더 많이 인상했다"는 설명이다. 화섬협회의 한 관계자는 "정유 및 유화업계가 원재료값 인상만으로 약 6000억원의 추가 이득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석유화학공업협회는 "이미 내수시장에 수출가격보다 t당 50~100달러씩 싸게 공급하고 있다"며 "국제유가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가격 인하는 힘들다"고 반박했다. 유화업계 관계자는 "화섬업체들이 공급 과잉으로 원료 값 인상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자 그 탓을 유화업계에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 완성차-주물업계=완성차업계와 주물업계도 납품 가격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27일 자동차주물부품생산협의회는 24개 주물제조업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완성차업계의 가격인하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협의회 측은 완성차 업체들과 납품가격 조정 협상을 시도한 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주물공급 중단 등 단체행동에 나설 방침이다.

완성차업체들은 최근 주물업계에 납품가격을 kg당 30원씩 내릴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주물협회에서는 "최근 주물용 원자재 값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는데 납품가를 내리라면 우리만 원가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주물업계는 지난 3월 완성차업계가 원자재가격 인상 요인을 반영해 주지 않는다며 갈등을 빚었다. 당시 완성차 업계는 주물업계의 요구를 일부 반영, 당초 kg당 1000원씩이던 주물 납품가를 1160원으로 올렸다. 이에 대해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최근 일부 하락했기 때문에 이에 따라 납품가 인하를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선업계-철강업계=포스코는 지난 27일 후판 생산량을 현재 연간 330만t에서 2008년까지 420만t으로 90만t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조선업계가 아우성을 쳤기 때문이다. 조선업계는 "최근 오름세인 후판 가격을 내리고 국내 공급을 늘려 달라"고 요구했었다. 현재 포스코와 동국제강이 공급하는 선박용 후판 가격은 각각 t당 55만원, 75만원대로 1년여 만에 15만~33만원씩 올랐다. 특히 후판의 원료인 슬라브를 수입하는 동국제강의 경우 올해 다섯차례나 가격을 올렸다.

조선업계는 특히 일본업체들이 오는 4분기부터 내년 1분기까지 후판 수출가격을 t당 150~200달러까지 올려받겠다고 선언해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호소다. 이에 대해 포스코.동국제강 등 철강업체 관계자들은 "내수공급가격이 수입가에 비해 이미 20~30% 싸기 때문에 가격을 내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며 "조선업계는 철강제품의 가격인상만 탓할 게 아니라 선박의 저가 수주를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 카드사-가맹점=비씨.KB카드 등 일부 카드사가 잇따라 가맹점 수수료를 올리겠다고 유통업체에 통보하면서 갈등이 시작된 싸움이 최근에는 전국가맹점사업자단체협의회가 집단대응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사태가 커지고 있다. 카드사 측은 "수수료가 원가에 못 미치기 때문에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가맹점들이 신용카드 사용 확대로 수익이 늘어난 만큼 일정한 비용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가맹점들은 카드사가 경영 부실로 인한 손실을 소비자와 자신들에게 떠넘기려고 한다는 입장이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불경기로 매출이 줄고 있는데 수수료마저 올린다면 손익구조가 크게 악화할 것"이라며 "카드사에 대해 수수료 인상의 근거로 제시한 원가 산정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홍주연.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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