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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싼 보수료가 부실불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 동(棟)에서 엘리베이터에 한두번 안갇혀 본 사람 없을 거예요. 대형사고가 나야 정신을 차릴 건지…. " 서울 목동 14단지 아파트 주민 백모(46.여)씨는 "늘 두려운 마음으로 탄다" 고 말한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달 13일에도 1424동의 두 승강기 중 한대가 오전에만 두번 고장을 일으켰고, 다른 한개도 4층에 멈춰 있었다.

이웃동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경비원은 "서있을 때가 더 많다" 고 했다. 14단지 관리사무소가 지난해 승강비 보수료로 지출한 돈은 1억1천5백만원. 꽤 돈을 쓰는데도 고장투성이인 것은 보수체계의 문제 때문이다. 전국 17만여대 승강기 중 상당수가 이처럼 위태롭게 운행 중이다.

*** 덤핑보수

IMF 이전 승강기당 월 9만~10만원이던 보수료가 최근에는 3만~5만원선. 3만원 아래도 있다. 지난해부터 급증한 보수업체들간 수주경쟁이 치열해지면서부터다.

저가(低價)보수료는 부실보수를 부른다. 채산성을 맞추려 저질부품을 쓰거나 부품값 부풀리기도 극성이다.

J사가 보수를 맡은 과천시내 U빌딩. 지난 3월 5일 승강기 문이 안 열려 승객이 갇힌지 한달만인 4월 10일 똑같은 사고가 있었다. B사가 관리중인 일산의 한 교회 승강기도 지난 2월 14일과 28일 같은 사고가 연달아 터졌다. 부실관리 탓이다.

승강기안전검사기관인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직원은 지난 5월 의정부의 한 아파트관리사무소로부터 기술자문 요청을 받고 현장에 갔다가 아연실색했다. 보수를 나온 업체 직원이 멀쩡한 승강기의 로프를 교체(5대 7백만원)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었던 것.

서울 구로동 모 보수업체 보수부장은 "월3만~4만원의 덤핑으로는 통상적인 점검은 물론 고장수리를 위한 교통비나 인건비도 안된다. 결국 부품교체 등 돈 많이 들어가는 '수리공사' 로 적자를 메운다" 며 "때론 성한 부품도 간다" 고 고백했다.

*** '뒷돈'거래

"수주경쟁 과정에서 건물 관리주체가 향응이나 돈을 요구하는 일이 많다. 맡고 있는 24개 아파트중 20개 정도가 그랬다. " (K보수업체 대표) "일감을 따내기 위해 (금품)요구에 응해야 한다.

그런 비용을 충당키 위해선 보수과정에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 (C보수업체 대표) 뒷돈 거래에 대한 증언이다.

한 검사기관의 검사요원은 "N보수업체 직원이 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 전기과장에게 현찰로 5백만원을 줬다고 털어놓더라" 고 했다.

아파트의 경우 관리사무소 소장이나 전기과장, 어떤 곳은 입주자대표 회장이나 총무가 '실세' 이며 이들이 로비대상이라는 것. 건물 관리자가 보수료를 입금하면 업체에서 인출해 그대로 되돌려 주는 수법도 있다고 한다.

"대개 두달치를 되돌려 준다. 액수는 3백만~4백만원 정도. 하지만 부품값 과대계상 등을 통해 몇달 안돼 10곱절 이상 뽑아낸다" 는 다른 업자의 실토다.

*** 저질 부품

현행 승강기 제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승강기 주요 부품에 대한 품질기준이 없다. 지난 2월 개정때 형식승인조항이 삭제됐다.

외국처럼 업계나 단체가 자율로 품질기준을 정하는 임의인증제도 도입돼 있지 않다. 누구나 제약 없이 부품제조.공급이 가능해진 "불량부품의 범람이 우려되는 상황" (승강기안전관리원 L검사원)이다.

L씨는 "지금처럼 대기업이 제조한 정품을 구해 쓰기 힘든 상황에서 불량부품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며 "대기업과 하청관계에 있지 않은 보수업체들은 브로커를 통해 시중에 나도는 싸구려 불량품을 구하기도 하고, 다급할 땐 청계천 등지에서 부품을 깎아다 쓰기도 한다" 고 말했다.

지난 5월 경기도 광명의 한 아파트에선 보수업체 대표 김모(48)씨가 단지내 승강기 운전반 부품들을 교체하면서 가짜 유명회사 부품을 정품인양 속여 6천5백여만원을 챙겼다가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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