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종시, 당당히 대안 내놓고 설득 나서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6면

세종시 수정론이 당(黨)·정(政)·청(靑)에서 힘을 얻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 정부 부처를 옮기는 것만으로는 ‘유령도시’를 만들 뿐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사실 원안대로는 정부의 효율성을 해칠 뿐 아니라 충청권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대안으로 기업·교육·과학단지 등을 유치해 자족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도 잡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지역 민심을 두려워한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물론 재·보선이 보름도 남지 않은 시점이어서 한나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22조원이나 들이는 국가적 사업을 그대로 방치하고 시간만 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늦어도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반드시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 사업 추진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미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원안 추진보다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훨씬 많이 나온다. 리서치 앤 리서치가 12일 발표한 조사에서는 행정부처의 이전을 최소화하고 과학 및 자족 중심도시로 건설하는 수정안에 절반이 넘는 50.7%가 찬성했다. 원안 추진은 33.3%에 불과했다. 정운찬 총리가 앞장서 수정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나서면서 여론의 방향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정부 고시를 변경해 이전 부처를 축소 조정하자는 의견도 있다. 정몽준 대표가 지난 6일 관훈토론에서 “부처 이전은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희망을 비친 것이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은 세종시 문제를 정치쟁점으로 몰아가고 있어 자칫 여당 단독으로 법 개정을 밀어붙이다가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내에서조차 박근혜 전 대표 등 일부는 침묵을 지키며 원안을 고수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단독 처리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석연 법제처장이 지적한 것처럼 법은 그대로 두고 고시만 바꾸는 것은 편법에 불과하다. ‘행정중심복합도시’라고 규정한 법의 취지를 충족하려면 ‘9부2처2청’을 다 옮기지는 않더라도 상당 부분을 그대로 이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렵더라도 당당하게 국민과 야당을 설득해 법을 고치는 것이 옳다. 이제 당·정·청이 머리를 맞대고 분명한 대안부터 마련해 국민과 야당 설득에 나서야 한다. 행정부처를 옮기지 않는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이미 토지 매입 등 상당 부분 진척된 세종시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 정부의 비전과 구상을 내놔야 한다. 그 내용을 개정될 법안에도 담아야 한다.

야당도 더 이상 이 문제를 정략의 수단으로 끌어안고 가서는 안 된다. 세종시는 선거를 앞두고 충청지역의 환심을 사보겠다고 내놓은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그래서 ‘재미’도 봤다. 하지만 이제라도 미래 한국의 경쟁력을 다시 한번 신중하게 염려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