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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 人權 잣대의 이중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상록수부대가 지난 4일 동티모르를 향해 장도에 올랐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독립을 반대하는 인도네시아 민병대의 만행에 유린당하는 동티모르인들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다국적군 파병을 주도했다.

그는 아시아의 가장 모범적인 인권국가인 우리나라가 어찌 동티모르인들의 참상을 외면할 수 있느냐며 국내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상록수부대를 파병했다. 타국의 인권상황에도 개입할 수 있게 된 우리의 위상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 뿌듯한 역사의 진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같은 시기에 한 기독교단체가 현지 조사해 발표했던 중국 내 탈북자들의 인권유린 참상에 대해선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金대통령이 장쩌민(江澤民)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표시했다는 발표는 없었다.

남의 나라 인권엔 우리 일처럼 나서면서 우리 동포의 인권침해와 유린에 대해선 남의 일로 보는 듯한 정부의 이같은 이중성에 국민은 어리둥절했다.

현 집권세력이 야당시절 가장 예민한 관심을 쏟고 노력을 했던 사항이 언론자유의 회복이었다. 그들은 유신 이후 정권의 언론공작에 의해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성향이 기승을 부릴 때 어김없이 가투(街鬪)를 포함한 시정투쟁을 했다.

金대통령의 자유언론에 대한 어록(語錄)은 내용도 고상하려니와 방대하기 조차하다. 金대통령이 수상자 10명 중 5명이 노벨평화상을 받아 권위를 자랑하는 필라델피아 자유메달상을 수상한 것도 인권과 자유를 향한 그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가 집권하는 날엔 언론자유문제로는 더 이상 마음 고생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기대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정부는 중앙일보 탄압사태가 단적으로 드러내듯 언론자유와는 동떨어진 언론간섭.언론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은 국회에서 자신의 중앙일보 보도간섭 행위에 대해 잘못된 기사의 시정을 요구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공보수석의 일상적 기능을 수행한 것이지 보도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역대 어떤 정권도 언론을 통제.간섭하면서 대외적으로 그것을 시인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남이 하면 탄압이고 자신이 하면 협조와 이해촉구라는 이중성이 현 정권의 언론정책에 진하게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朴장관은 나아가 "언론이 정부를 탄압하고 있다" 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다루는 언론사에 남을 억설(臆說)이다. 대통령이 이런 이중적인 참모들의 보필을 받으면서 국정을 운영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부류의 몇몇 핵심참모들이 집권 초부터 중앙일보에 부당한 보도 간섭 및 인사개입을 시도하다가 흡족할 만한 수준의 결과를 못얻자 끝내 홍석현(洪錫炫)중앙일보사장을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인격살인' 이라고 표현한 구속사태까지 낳고 말았다.

洪사장 사태는 필자를 포함한 중앙일보 동료들에겐 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그는 중앙일보 경영을 맡은 이래 투명하고 사심없이 회사발전과 지면쇄신의 개혁에 진력해 구성원 대다수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아왔다.

그런 측면에서 그에게 그런 불미스런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인간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중앙일보 가족들은 이심전심으로 느끼고 있다.

그의 비리혐의 자체만으로도 중앙가족에겐 참담함을 주었다. 우리가 비리혐의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은 까닭은 그에 대한 최종 판단은 법원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7개월간 권력과의 관계에서 중앙일보가 몇몇 정권실세들의 회유와 굴종 요구에 더 이상 응하지 않고 버팀으로써 洪사장이 표적사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판단과 인식을 우리 구성원들이 공유한 것은 우리에겐 큰 힘이 됐다.

그에 따라 우리 신문이 언론 본연의 기능을 사수하고 신장하는 결연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던 것이다.

洪사장의 인신자유를 대가로 한 편집.경영.인사권의 거래가 이뤄져선 안된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젊은 기자들이 洪사장이 검찰에 소환되던 날 "洪사장, 힘내세요" 라고 절규했던 것이다.

金대통령은 자유메달 수상식에서 "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고 목숨을 걸고 싸운 한 한국인이 이제 민주정부의 대통령이 돼서 이 자리에 섰다" 고 감회어린 연설을 했다. 언론자유는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원천이자 인권개념의 핵심이 아닌가.

金대통령이 인권적용의 이중적 잣대로 언론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평가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간곡히 바란다.

이수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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