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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 수기 독점연재] 15.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15. 감옥에서 보낸 청소년기

나고야(名古屋)경찰서 지하 유치장에 갇혀있던 나는 어떤 덩치 큰 형사에 의해 2층 유도장으로 끌려 갔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내 몸을 매트에 내동댕이 쳤다. 정신이 몽롱했다.

"너 그 시계 훔쳤지. 어디 사는 놈이야. " "훔치지 않았어요. 정말이예요. " 나는 아무리 다그쳐도 훔치지 않은 것을 훔쳤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시미즈 (淸水:시즈오카현의 소도시)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도 밝히지 않았다.

결국 부랑자로 몰린 나는 나고야의 세토(瀨戶)소년원으로 끌려가 혹독한 군사훈련과 노동을 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져 나고야 조선소에 끌려가게 된다. 한 방에 있던 야마구치 이사오(山口勇)란 친구가 탈출을 기도하다 붙잡혔는데 고문을 못이긴 그가 나와 탈출을 공모했다고 불어버린 것이었다.

죄라곤 그의 탈출 사실을 사전에 알리지않았던 것 뿐인데 그 일로 인해 '소년보국정신대' 에 징발됐다.

성인 죄수들로 구성된 '보국대' 와 함께 매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이대로 가다간 죽을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전장(戰場)에 끌려갈 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말기의 어수선한 틈을 타 탈출에 성공한 나는 이모가 사는 구마모토(熊本)에서 한동안 숨어 지냈다.

되돌아보면 나는 참 요령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꺾을 때 휘어지기만 해도 최소한 부러지지는 않을텐데 나라는 인간은 꺾으면 도리어 버티다가 부러지곤 했다.

내가 50여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철창 속에 갇혀 지낸 것은 그런 성격 탓이 클 것이다. 나고야 경찰서에서 어머니 이야기만 꺼냈어도 훈방됐을 것인데 계부와 다시 마주치기 싫어 입을 다문 것이 부랑자로 몰리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광산에서 잡일을 하며 숨어지내던 나는 그 곳에서 야쿠자 3명과 큰 싸움이 벌어져 중상을 입고 하는 수 없이 시미즈로 되돌아 갔다.

당시 나는 2살 연상의 가미야 게이코(神谷惠子)란 처녀와 사귀고 있었는데 야쿠자들이 그녀를 괴롭히는 바람에 상대가 안되는 줄 알면서 달려들다가 그 꼴이 된 것이었다.

그때 일당 중 한 명이 휘두른 오토바이 체인에 맞아 생긴 왼쪽 눈썹 위의 상처는 지금도 깊게 남아 있다.

내 운명은 참으로 얄궂었다. 우리 민족이 일제(日帝)의 사슬에서 풀려난 광복까지도 감호시설에서 맞았으니 말이다. 시미즈로 돌아와서도 철없이 건들거리며 살고있던 나는 어떤 가게에 지갑이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견물생심(見物生心)에 슬쩍 들고나오다 들키는 바람에 시즈오카(靜岡)현경(縣警)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 곳 유치장에서 미이라처럼 바짝 마른 상처 투성이의 동포 한 명을 만났는데 그가 내게 "우리 나라는 반드시 독립한다" 는 이상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독립이 뭔지 관심조차 없던 내가 '독립' 이라는 말을 진지하게 들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절도 혐의로 붙잡힌 나는 소아이(相愛)학원이란 감호시설에 수용돼 있다가 해방이 되면서 풀려났다.

해방 후 많은 우리 동포들이 귀국선을 타고 무작정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우리 가족은 시미즈에 남았다. 생활 기반이 일본에 있는데다 조부모님까지 모두 건너와 살고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물이 다 된 나이에 할 일 없이 빈둥대던 나는 쌀 암거래를 비롯한 자질구레한 일로 감옥을 내 집처럼 들락거렸다.

주로 절도.사기.횡령 등의 죄목이었는데 남에게 빌린 손목시계나 신발, 양복 등을 돌려주지 않고 팔아먹다가 붙잡힌 정도의 잡범에 불과했다. 솔직히 말해 먹고살게 없던 그 시절에는 누구라도 돈 되는 일이라면 눈을 뒤집고 찾아다녔다.

그런 와중에 나는 술 취한 행인에게 낭패를 당하고 있던 세 살 연상의 일본인 여자를 도와준 것이 인연이 돼 동거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희로야, 아직 너 나이 열 아홉 밖에 안되는데다 상대가 연상이라서 결혼은 곤란해. 카아짱(엄마)도 일찍 결혼해 이 고생을 하고있지 않니" 라며 말렸지만 그녀에게 흠뻑 빠져있던 내겐 그 말씀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끝내 고집을 부려 양가의 결혼 승락을 받아냈지만 어떤 사기사건에 연루돼 마쓰모토(松本)소년형무소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녀는 내가 나오기 만을 기다리며 하루가 멀다하고 면회를 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아무 말도 없이 소식을 끊어버렸다.

"대체 무슨 일일까. "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나보다 뒤에 감방에 들어온 스기우라 스에키치(杉浦末吉)란 친구가 불쑥 "히로짱(희로), 네 여자가 경찰과 붙었어. 함께 살고있단 말야" 라는 말을 했다.

당장이라도 형무소 밖으로 뛰쳐나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성인이 되면서 마에바시(前橋)형무소로 이감된 나는 49년 10월에 출소하자마자 그녀를 찾으러 다녔다. 스기우라의 말은 사실이었다.

내가 가케가와(掛川)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때 면회 온 그녀를 좋게본 경찰간부가 젊은 순경에게 소개시켜줬던 것이다.

나는 가슴에 칼을 품고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냈지만 조용히 집안 청소를 하고있는 뒷 모습을 보고 왠지 서글퍼져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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