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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노래가 어렵다구요?…'자녀눈높이'로 즐겨볼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H.O.T는 다 고씨니?" H.O.T의 노래 'Go H.O.T' 를 우연히 듣고난 엄마. 딸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 노래는 "Go 희준, Go 토니, Go 재원…"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또다른 엄마는 "얘 끔찍도 해라 'You Got Gun' 이 뭐니. 총을 가졌단 얘기 아니니" 라고 묻는다. (역시 H.O.T 노래중의 한 구절)

그러자 딸은 "엄마 그건 '너 갔군' 이란 뜻이야" (영어의 'Got Gun' 을 발음이 비슷한 우리말 '갔군' 으로 해석) 컴퓨터와 영어를 밥먹듯 접하는 10대에 대해 부모들인 기성세대는 이를 반영한 10대 가요에 어쩔 수 없이 괴리감을 갖게 된다.

올 추석, 브라운관은 H.O.T를 비롯한 10대 가요 스타들을 쉴 새 없이 비쳐대겠지만 세대차를 좁히긴 어려울 듯하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른 영어랩, 문법도 안맞고 정체불명 단어도 많아 듣고 있으면 짜증만 난다.

그런데 애들은 뭐가 좋다고 흥얼대고 따라서 춤추는 걸까. 한가위를 맞아 '가족화합' 차원에서 좀 같이 감상할 길은 없을까.

H.O.T연구서 '즐거운 반항' (제이팝 펴냄) 의 저자인 신원섭PD는 "솔직히 기성세대로서 10대 가요를 1백% 이해하기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며 "어른들이 트로트를 어린시절 '최신가요' 로 자연스레 받아들였듯이 10대들 역시 랩과 하드코어등 '지금의 노래' 를 그들만의 스타일로 즐긴다고 양해하면 그만일 것" 이라 말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을 키우고있는 여성학자 오숙희씨는 "애들 노래는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지말고 일단 가사를 들어보라. 그리고 아이에게 가사집 (대개 음반 자킷에 있다) 을 달라고 부탁해 같이 읽고 뜻을 새겨보라. 그러면 의외로 '좋은' 가사들이 많이 발견된다" 고 말한다.

일례로 H.O.T의 '빛' 은 거칠고 빠르게 들리지만 가족화합을 다지자는 건전한 메시지를 담고있으며 '위 아 더 퓨처' 는 밝은 인류의 미래를, '행복' 은 모두 행복하게 사는 공동체를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일부 걸그룹의 노래에서 '나를 가져' 같은 구절은 "여자가 무슨 물건이니" 같은 질문을 딸에게 던지며 문제점을 토론하는 것이 좋다고. 오씨는 "아이들을 알려고 하기 전에 겉만 보고 포기했던 건 아닌가.

조용한 밤에 10대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들어보니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내 마음속의 고정관념을 하나씩 깨주고 있었다" 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성세대에게 제멋대로 영어를 조합하고 문법을 파괴한 정체불명 랩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이해가 안될 것이다.

H.O.T의 신곡 '아이야' 에는 "I cut your T dripping all your p" 란 구절에서 'T' 와 'P' 가 비문법적이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방송보류 판정을 받았다.

이에 대해 신원섭PD는 "영어랩을 해석하며 듣는 10대는 극히 드물다. 랩의 단어 하나하나는 10대들에겐 의미소가 아니라 따라 춤추기 좋은 리듬소로 받아들여진다" 며 "공중파 방송에서 이같은 영어랩을 틀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10대들에게는 기성세대의 염려와는 다른 차원에서 소화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을 맺는다. "10대 가요를 꼭 어른 입장에서 너그러이 '이해'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입시 경쟁의 스트레스를 H.O.T같은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것으로 대리표출한다는 식의 해석도 어른들의 자의적 생각이다.

쇼프로를 장기간 연출하면서 10대들을 관찰한 결과, 10대들은 그냥 그들의 구미에 맞기 때문에 또래 가수들에 열광할 뿐이란 결론을 내렸다. 10대들을 그들의 '눈높이' 로 보자. "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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