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극단 미추, 삼성문학상 수상작 '춘궁기' 무대에 올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탈북자 문제 처리를 둘러싸고 한.중 간의 미묘한 갈등마저 빚고 있는 지금 탈북에 얽힌 한 연극이 막을 올렸다.

지난해 삼성문학상 희곡부문 당선작인 박수진의 '춘궁기' 를 극단 미추 (대표 손진책)가 무대화한 동명 작품이다.

27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계속되는 이 연극은 무거운 주제와는 달리 웃음이 가득한 무대로 꾸며졌다.

한때는 부부였으나 지금은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져 살아가는 이금례 할머니와 김봉출 할아버지의 생활을 한 무대 위에 병치시키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작품의 미덕은 선입견을 깨는 참신한 발상, 그리고 관객에게 억지로 메세지를 전달하기보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어릴 적 반공교육이 아니더라도 최근의 금강산 억류사건 등으로 인해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막연히 우리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선입견을 깬다.

우리에게 X세대가 있듯이 북한에도 못말리는 신세대가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 자체가 파격적이다.

김봉출 할아버지의 손자 김분희는 춤과 노래에 소질이 있는 처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쁨조에 뽑히는 것이 소원인 철없는 신세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출신성분이 나빠 북한에서는 꿈을 이루기가 불가능한 손녀에게 탈북을 권유한다.

고향인 강원도 산골마을 와룡리에 가면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라면서. 한편 와룡리에서는 가뭄 끝에 마을청년들이 사슴을 잡아 기우제를 지내기로 한다. 어차피 사냥꾼들에게 잡힐 사슴 한마리쯤 잡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사슴이 도망다니는 악몽에 시달리며 청년들을 만류한다.

국경을 넘지못하고 방황하는 분희와 총부리에 쫓기는 사슴, 이 두 장면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결국 사슴이 총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 분희도 지뢰를 밟고 죽는다.

이 작품은 슬픈 이야기를 아주 담담하게 표현해 절제미를 살려내고 있다.

극작가 박수진씨가 오태석씨의 제자답게 우리 정서가 담긴 구어체 대사를 감칠맛나게 구사하는 것도 돋보이는 대목.

또 손진책씨 밑에서 13년간 조연출 생활을 해온 강대홍씨는 그의 이번 연출 데뷔작에서 손진책씨로부터 받았던 영향과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 모두를 보여준다.

스승의 장점을 이어받은 토양 위에 새로운 세대의 발랄함을 보여주는 이 무대는 차세대 연극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니만큼 한번 가봄직한 연극이다. 0351 - 879 - 3100.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