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제재완화 의미] 北·美관계 정상화 첫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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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 정부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는 한국전 이후 반세기 동안 북한에 가해진 제재에 대해 미국이 취한 가장 포괄적인 조치다.

비록 부분적이지만 테러지원국 지정과 공산국가에 대한 일반적 제재 등 의회의 동의나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과 국방분야와 관련된 민감한 부분을 제외하고 미 정부가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각종 규제를 대폭적으로 풀어주는 전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도 지난해 8월 취했던 국교 정상화 교섭 동결.전세기 운항중단 등의 제재를 완화할 움직임을 보여 동북아 일대 화해무드가 점차 무르익는 분위기다. 아울러 남북간 관계진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 정부의 완화조치는 이달 초 베를린 북.미 고위급 회담 결과 북한이 추가적인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를 시사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아울러 베를린 협상과 이번 조치가 모두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건의한 대북 포괄구상의 큰 틀 안에서 취해진 만큼 미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 크게 선회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다만 북한측이 이번 미 정부의 완화조치로 단기적 이득을 볼 것으로 기대하기는 이르다.

우선 대북투자 부문에 있어 북한의 경제여건과 관행 등이 미 기업들의 투자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북한과의 교역도 북한에 대한 최혜국대우 (MFN) 와 가장 기초적인 교역조건인 일반특혜관세 (GSP)에 대한 미 의회의 법 개정 및 용인 없이는 높은 관세장벽으로 인해 북한 상품의 시장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업.광업 등 대북 투자가치가 높게 평가받고 있는 분야에 대해선 미 기업들의 단독투자, 혹은 한국.일본기업과의 공동투자 등이 우선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내 북한 자산 동결 해제가 이번 조치에서 제외된 것은 그동안 미 기업들의 대북투자.교역 과정에서 북측의 미지불 액수가 적지않아 자산 동결 해제시 미국 내 법적 소송이 잇따를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북한도 미국의 조치에 호응하듯 조만간 미사일 발사유예를 선언할 것으로 보이며, 현 차관급을 넘어 장관급 북.미회담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아울러 북한 핵동결을 완전 보장하는 핵 전문가 회담도 열릴 것으로 관측되는 동시에 한국 정부의 포용.평화공존 정책이 힘을 갖게 됐다.

이번 미국의 조치는 대북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이란 정치적.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추후 양측 경제관계의 발전 여부는 ▶북한 내 체제정비 ▶한국.미국 등 관심 기업들의 경쟁 여하 ▶미 의회 내 관련 법규 논의의 방향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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