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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 <6> ‘이슬람 유향’ 루트를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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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슬람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의 『천애횡단 갈망자의 산책』에 나온 신라 지도. 신라를 섬으로 묘사했다. 당시 아랍인들은 세계가 달걀을 반으로 가른 형태라고 생각했다. 노른자는 육지, 흰자는 바다를 뜻한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부분이 신라.

중국 맨 끝에 산이 많고 왕들이 많은 나라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라국이다. 그곳에는 금이 풍부하다. 이 나라에 와서 영구 정착한 이슬람교도들은 그곳의 여러 가지 이점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나라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 『도로와 왕국의 책』 중 일부

9월 15일 이집트 카이로 중심가인 타흐릴 광장 뒤쪽 밥엘칼크 거리. 황토색 3층 건물의 이집트국립도서관 산하 고문서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손으로 직접 쓴 6만여 권의 이집트 고문서와 희귀 책들이 소장돼 있다. 아랍 학자 이븐 쿠르다드바 가 저술한 역사서인 『도로와 왕국의 책』도 그중 하나다. 라일라 갈랄 리즈크 도서관장은 “이 책은 희귀본이라 창고 안에 들어가서 직접 볼 수 없고 저장된 마이크로 필름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장보고 시대에 쓰인 이 책에는 놀랍게도 ‘씰라(신라)’라는 단어가 있었다. 이 책은 이슬람 상인이 신라와 교역한 물품도 소개했다.

‘이 나라에서 가져오는 물품은 명주·비단·검(칼)·사향·장뇌·로회(알로에)·마안(말 안장)·표피(표범 가죽)·도자기·돛천·키민카우(미상)·쿠란잔(미상)·고라이브(인삼 추정) 등이다.’

키민카우와 쿠란잔이 어떤 물품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고라이브는 인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다. 당시 신라가 검·인삼·생강 등을 중국이나 일본으로 다량 수출한 점을 고려할 때 아랍 지역으로도 수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에서 이집트까지는 비행거리로 5000~6000㎞다. 이 책이 쓰인 1200년 전엔 배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 왕래했기 때문에 당시 항해술로 가려면 꼬박 1년 이상 걸린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신라와 이슬람 상인이 어떻게 활발하게 교역을 했을까. 해답은 바로 신라 장보고 선단의 해양 네트워크에 있었다.

신라 무역 선단이 아랍 지역까지 갔다고 보는 역사학자는 거의 없다. 한국이나 중국 문헌에 신라와 아랍이 직접 교역했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신라 무역 선단은 당나라에서 이슬람 상인을 만나 거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알로에는 원산지가 아라비아·아프리카 지역이다. 장뇌도 아열대 지방에서 나오는 물품이다. 신라의 무역 선단은 다른 나라에서 산 물품을 아랍 지역 등에 되파는 중계무역도 활발히 했다. 당시와 달리 요즘 한국은 중동·아프리카 지역에 주로 자동차·기계·타이어·철강 등을 수출하고 원유 등을 수입한다.

삼성경제연구소 한창수 수석연구원은 “장보고의 무역 모델은 단순히 한·중·일을 연결하는 3국 무역에 그치지 않았다”며 “청해진은 신라·당·일본 항로의 중심일 뿐 아니라 페르시아·인도·태국 등과 중국 동남부를 연결하는 남양항로와 동북항로의 연결 고리였다”고 말했다.

이 도서관에는 신라를 설명하는 또 다른 책이 있었다.

이슬람 역사에서 위대한 지리학자로 꼽히는 알 이드리시 의 『천애횡단 갈망자의 산책』이다. 이집트도서관에 이 책을 의뢰하니 같은 제목의 책이 무려 20여 권에 달했다. 이드리시가 세계 각국을 여행할 때마다 쓴 책을 같은 이름으로 냈기 때문이다.

이드리시는 세계지도(1장)와 세부지도(70개)에서 ‘씰라’를 섬으로 구성된 나라로 표시했다. 신라에 대한 설명에서는 ‘중국 동쪽에 있는 신라라는 나라는 매우 풍요하고 살기 좋은 나라다. 황금이 풍부해 심지어 개도 금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곳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장보고 선단은 직접 무역뿐 아니라 외국 상품을 그대로 제3국에 수출하는 중계무역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부를 축적했다. 이 때문에 당시 신라 거리에는 서역 물품이 넘쳐났다. 신라 흥덕왕이 수입 사치품을 쓰지 말도록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평민도 외래 물품을 즐길 정도로 신라는 무역으로 부유해졌던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장보고 선단의 상대를 가리지 않는 거래였다. 이들은 아랍이나 동남아시아 상인과도 거래를 했다.

장보고는 국제적인 해상 교역가답게 다양한 품목을 취급했다. 페르시아·아라비아의 향료·카펫·유리 제품까지 거래했다. 해외 교류 품목의 판로 개척을 위해 봇짐 장사법을 도입하고 5일, 7일 장과 같은 재래시장을 활용하기도 했다.

장보고는 새로운 영역을 기획해 선점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다. 이 같은 열린 마음, 외부 확장형 성향, 다양성이 무역의 성공을 이끌었다. 그가 한국 최초의 ‘글로벌 종합상사 최고경영자’로 평가 받는 이유다. 



신라에 수출된 아라비아 유향은  40℃ 넘어야 고품질 생산 … 배 아플 때 물에 타 먹기도

400여 년 된 유향나무 아래서 오만 농부가 앉아 있다. 이들은 유향나무를 끌 같은 도구로 흠집을 내는 방식으로 유향을 채취한다.


9월 18일 오전 오만의 휴양도시 살랄라. 수도인 무스캇으로부터 1000㎞ 떨어진 조용한 휴양도시다. 서울로부터 항공기로 5500㎞를 날아가야 하는 ‘먼 나라 먼 도시’다.

지프를 타고 살랄라로부터 100㎞ 가량을 서쪽으로 달렸다. 사막엔 돌밭과 간간이 보이는 1~2m짜리 나무뿐이었다. 이곳에서 85세라고 밝힌 무살렘 슬리몬 노인이 조카·손자와 함께 끌같이 생긴 도구로 나무에 흠집을 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더 많은 ‘루밴’이 필요해. 이를 위해선 튼튼한 낙타가 필요하죠~.”

흠집이 난 나무에서는 우윳빛 액체가 송골송골 맺혔다. 뜨거운 사막 위에서 맨발로 일하는 슬리몬은 “이 나무는 400년 된 것으로 나는 80여 년간 루밴을 채취했다”며 “하루 약 30그루씩 채취한다”고 말했다.

오만어로 루밴은 유향(乳香·프랭크인센스)을 뜻한다. 유향은 열대 식물인 유향 나무에서 나오는 우윳빛 분비액을 말려 만든 노랗고 반투명한 덩어리다. 오만 사람은 배가 아플 땐 이를 물에 넣어 먹기도 하고, 집에서 향을 피워 벌레를 쫓기도 한다. 또 옷에 향수로 쓰기도 한다.

살랄라는 수천 년 전부터 유향 수출로 부를 누리던 도시였다. 이 지역에서만 질 좋은 유향이 주로 생산되기 때문이었다. 살랄라 지역의 특이한 토양,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기온,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날씨 등이 결합돼야 품질 좋은 유향이 생산된다.

이 지역 유향은 로마로 수출되기도 했고 이집트에서 파라오를 미라로 만들 때 사용되기도 했다. 유향이 수출된 아시아 국가 중에는 1200년 전의 신라도 포함돼 있다. 경주의 진현동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아라비아산 유향이 전시돼 있다. 1966년 10월 불국사의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할 때 탑 안에 있던 금동제사리외함에서 발견된 것이다.



특별취재팀 ▶팀장=김시래 산업경제데스크 ▶취재=김문경 숭실대(역사학) 명예교수, 천인봉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사무총장, 김창규·염태정·이승녕·문병주·강병철 기자 ▶사진=안성식·오종택·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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