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코벤트가든의 아람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래스웍스 전시에서 만난 다니엘 차니 교수. 덴마크 무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차니 교수는 이곳에서 세계 신인 디자이너들의 전시를 24회 선보여왔다. [런던=이은주 기자]
“제가 하는 일은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덧씌워진 신화를 벗겨내는 겁니다. 디자인을 가르치고 전시를 기획하는 일은 모두 ‘디자인은 마술이 아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한 것이죠.”
큐레이터, 디자이너, 그리고 영국의 명문 예술학교인 RCA(Royal College of Art)의 교수(시니어 튜터). 세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는 다니엘 차니(Daniel Charny) 교수는 현재 학계와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최근 런던에서 열린 주요한 디자인 전시 중 그가 참여한 것만 3개나 된다.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초빙 큐레이터로 런던 디자인사를 집약한 ‘수퍼 컨템포러리(Super Contemporary)’전시를 총괄했고,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 런던서 연 ‘디자인 메이드’전에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차니 교수가 젊은 디자이너들 작품 중에서 골라 ‘디자인 메이드’전에서 선보인 가구 ‘월파’. 파티션을 겸용할 수 있는 소파다.
지난 4일 폐막한 ‘수퍼 컨템포러리’전(디자인 뮤지엄)에선 런던이라는 도시를 통해 디자인과 사회의 관계를 조명했다. 메시지의 핵심은 “런던은 다양한 아이디어가 역동하는 곳임을 전하는 것”이었다. “런던이라는 도시에는 ‘이것이 런던 스타일이야’ 하고 고집할 한 가지 스타일이 없습니다. 아예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 자체가 항상 바뀌는 곳이죠.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생각도, 작업 방식도 모두 다르니까요. 런던의 힘은 거기서 나옵니다.” 그는 “‘다른 것’을 포용하는 런던의 문화가 세계의 디자이너들을 끌어들인다”며 “런던이야말로 세계 디자인의 허브”라고 강조했다.
◆디자인은 소통이다=차니 교수는 “한국 디자이너들과 한국 학생들 작품은 상징적인 요소가 강한 게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학생들은 ‘메타포(metaphor)’적인 요소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장점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상상력이 그 틀에 갇혀버리면 현대적인 아이디어를 따라잡기 어려워요.” 한국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부탁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전세계 학생들이 모인 RCA에선 한 강의실에서 20여 개국 출신 학생들을 가르친다. “어떤 학교에서는 ‘이것은 잘했다’ ‘이것은 별로다’라고 평가해주기도 하겠지만, RCA에서는 무엇이 나쁜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요. 대신에 ‘이것은 재미있구나’ ‘이 점이 맘에 든다’며 좋은 점만 지적합니다. 영국 방식이죠. 그래서 학생들은 피드백을 알아듣는 법을 배우는 데만도 몇 달이 걸립니다.” 한국 학생들의 특징은 하나 더 있다. 판에 박은 듯한 드로잉 기법이다. “한국 학생들은 드로잉엔 자신감을 갖고 있는데, 모두 똑같이 그려서 정말 놀랐죠.” 그럴 때마다 그는 “전에 배운 것(테크닉)은 잊어달라고 당부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통하는 방식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에코 디자인, 그 이상을 고민하라=다니엘 차니 교수는 이스라엘 가구 디자이너 출신이다. 1992년부터 디자인 강의를 해왔으며 98년부터 RCA에서 가르쳐왔다. 역시 이스라엘 출신으로 12년간 RCA의 학장으로 재직해오다 최근 사직한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론 아라드(Ron Arad)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부터 코벤트가든의 아람갤러리에서 신인 디자이너들의 실험적 작품을 소개한 전시만 24회에 달한다. 런던 디자인뮤지엄의 전략 컨설턴트를 겸하며 론 아라드가 디자인한 이스라엘 디자인뮤지엄의 컬렉션 자문도 맡고 있다.
그에게 요즘 디자인계의 핵심 화두를 물었다. 서슴없이 ‘에코(친환경)와 휴머니티’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누구나 다 이 두 가지에 주력하고 있다는 겁니다. ‘에코’에만 매달리다가는 길을 잃을 수 있죠.”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들려주는 조언이었다.
런던=이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