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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읽는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여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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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왕조의 여인들-중국현대사의 이면』
양중미 지음·강귀영 옮김
천지인, 317p, 15,000원.

왕스구(王十姑), 뤄이구(羅一姑), 양카이후이(楊開慧), 타오스잉(陶斯咏), 허쯔전(賀子珍), 장칭(江靑), 장위펑(張玉鳳), 멍진윈(孟錦雲),

상관윈주(上官雲珠), 딩링(丁玲), 쑨웨이스(孫維世), 장한즈(張含之) …
마오쩌둥이 따르고, 즐기고, 이용한 여인들이다. 이들 외에도 그와 잠자리를 같이한 여성들로는 장츠중(張治中)의 딸, 마오의 연애시를 받은 한 여성 민병을 비롯해 수많은 문공단원들이 있었다.
마오는 양카이후이와 결혼해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마오안잉(毛岸英)을 낳았다. 그는 이혼도 하지 않은채 징강산(井崗山) 비적 우두머리의 사촌여동생 허쯔전과 결혼했다. 일종의 정략결혼이었던 셈이다. 옌안에서는 장칭과 눈이 맞아 허쯔전을 버렸다. 신중국 수립 이후에는 장칭의 눈을 피해 다른 여성들과 ‘암도진창(暗渡陳倉, )’했다.
이책의 저자는 양중메이(楊中美)다. 그는 중국에서 태어나 문혁기간 일본으로 건너가 중국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중국 최고 지도부의 전기를 전문적으로 써왔다. 그가 이번엔 마오의 여성사를 파헤쳤다. 지난 2007년 대만에서 나온 『붉은 왕조의 연애사(紅朝艷史)』가 최근 한글로 번역됐다. 저자는 역사속에 가려진 진실을 들춰내 마오의 그늘에서 벗어남으로서 궁극적으로 중국의 ‘현대화’를 추동해 내고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예기(禮記)』에 “飮食男女,人之大欲存焉”란 말이 있다. 식욕과 성욕은 사람의 큰 욕심이 머무는 곳이란 뜻이다. 맹자는 “먹는 것과, 남녀관계는 본성이다(食色,性也)”라고 말했다.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 ‘색, 계(色,戒)’도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본성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마오는 여자에 관한한 거침이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연구 결과다. 저자는 중국의 “부인보다는 첩이 좋고, 첩보다는 몸종이 좋고, 몸종보다는 기생이 좋다”는 속담을 이야기한다. 마오의 삶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마오의 마지막 여자는 장위펑이었다. 동북지방 무단장 출신의 소학교 학력의 장위펑은 마오의 전용열차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마오의 낙점을 받아 말년의 그 옆에서 수행비서로 일했다. 마오는 그녀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고 그녀의 말은 곧 최고 지시사항이 되었다. 당시 총리였던 화궈펑이 국가 대사를 보고하기 위해 마오를 찾아갔는데도, 낮잠 자는 수행비서 장위펑을 깨우지 못해 마오의 처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당시 부주석 왕훙원은 “그녀가 화를 내면 저우언라이 총리까지 급히 달려와 감언이설을 해야 하네”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의 ‘문고리 권력’은 질투의 화신 장칭까지 어쩔수 없었다. 마오의 여인 가운데 유일하게 장칭과 트러블이 없었던 여자다. 그러나 마오 사후 후야오방이 그녀를 챙기려 했음에도 덩샤오핑은 “이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우리가 그녀가 리위펑이든 왕위펑이든 관여할 필요가 없고, 이런 선례를 만들 필요도 없다. 예전에 궈머뤄(郭末藥) 동지가 사망한 후에도 여자들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많은 요구를 한 적이 있다. 명분이 옳지 않으면 말을 들어줄 수 없다. 우리는 그런 것을 모두 인정해줄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했다.
이 책에는 저우언라이의 여성편력과 부인 덩잉차오와의 에피소드도 중간중간 나온다. 붉은왕조의 여인들은 마오의 죽음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가깝게는 장쩌민 시절 베이징방의 보스 천시둥(陳希同), 후진타오의 상하이방 천량위(陳良宇)도 여성문제로 낙마한 케이스다.
마오는 여자를 사랑한 시인이었다. 저자는 그의 대표작 ‘심원춘(沁園春)-눈(雪)’의 한 구절을 개작해 책 머리를 시작했다.
“모두 지나간 일이거니, 정녕 영웅호걸을 찾으려거든 ‘마오쩌둥(원시에는 오늘今朝)’을 살펴봐야 하지 않으리(俱往矣, 數風流人物還看’老毛’)”

신경진 중앙일보중국연구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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