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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씨 수기 독점게재]4.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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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가 사람을 죽였구나. " "기어코 일을 저질렀구나. " 두려움은 없었다.

나는 카바레 밍쿠스 천장을 향해 한 발을 더 쐈다.

그리고 밖에 세워둔 승용차로 달려갔다.

후에 일본 검찰이 주장했듯 야쿠자와의 개인적인 금전문제 때문에 범행했다면 그 자리에서 자살했거나 인질극을 벌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꼭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나는 시즈오카 (靜岡) 시와 시미즈 (淸水) 시 사이에 있는 규노산 (久野山) 쪽을 향해 차를 몰았다.

2월 하순의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죄송합니다. 내가 아니면 우리 동포 중 다른 누군가가 했을 일을 어머니의 아들 희로가 했다고 생각하고 용서하세요…. " 유료도로를 따라 니혼다이라 (日本平.언덕이름)에 도착한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술을 마신 후 오던 방향과 반대 쪽으로 내려갔다.

도중에 나를 자식처럼 아껴주던 도요조 (豊趙.재일동포 조호연씨의 일본명) 아저씨 집을 찾아갔다.

부동산업자인 도요조 아저씨는 어머니의 간절한 요청에 방탕한 생활을 하던 나의 뒤를 돌봐주던 분이었다.

사채업자인 야쿠자 소가도 도요조 아저씨는 대접을 해주는 편이었다.

언젠가 니혼다이라에서 나와 소가가 한판 붙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도요조 아저씨와 부자지간처럼 지낸다는 소리를 듣고 극한 대결까지는 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밤 9시가 조금 지난 시간. 나는 도요조 아저씨 집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스미마셍, 고로시마시타 (죄송합니다, 죽였습니다)" 라고만 말하고 곧장 현관 옆 사무실로 들어가 시미즈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니시오 주임이 받았다면 내 목소리를 금방 알았을 텐데 다른 형사가 나왔다.

나는 다짜고짜 "방금 시미즈시에서 사건이 일어났을 테니 알아보라" 고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놀란 도요조 아저씨 부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도 자세히 물어볼 상황이 아니었던지 "어디로 갈 생각이냐" 고만 물었다.

나는 그저 "이로이로 오세와니 나리마시타 (여러모로 폐만 끼쳤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고마운 분들을 뒤로 했다.

사회적으로는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방법으로 울분을 폭발시키고 있던 나였지만 그 때의 개인적인 비정함.무례함 등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눈덮인 산길을 지나 시즈오카현 북서부 쪽의 계곡 스마타쿄 (寸又峽) 온천지대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30분이 지나서였다.

스마타쿄는 사건 현장에서 북서쪽으로 80㎞쯤 떨어진 곳이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동포를 '조센징 (조선인)' 이라고 멸시하고 괴롭혀온 사악한 야쿠자를 죽이면서 시작된 나의 '전쟁' 이 마침내 일본경찰과 사회를 상대로 시작됐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내가 스마타쿄로 간 것은 계획된 행동은 아니었다.

얼어붙은 눈길을 따라 첩첩산중까지 들어간 것은 경찰 검문을 피해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일본인이나 다름없는 내가 모든 일본 사회와 경찰을 미워한 것은 결코 아니다.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차별 없이 나를 그들의 울타리 속에 넣어준 고마운 일본인들도 무수히 많다.

내가 출소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 각지에서 보내준 격려의 편지는 한때 일본 사회 전체를 원망하기도 했던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한 여관 현관문을 열고 "곤방와 (밤중에 실례합니다)" 하고 세 번 소리쳤다.

눈 덮인 산골 여관이라서 그런지 현관문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았고 손님들은 모두 잠든 듯 아무 대답도 없었다.

작은 복도를 지나 '다케 (竹)' 라는 팻말이 붙은 방문을 열었다.

사냥꾼 모자를 쓰고 망원렌즈 달린 엽총을 든 나는 누워있는 두 사람을 향해 "잠깐 일어나보세요" 라며 그들을 깨웠다.

손님 중 한 사람이 일어나 불을 켰다.

"시미즈에서 두 사람을 죽이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엽총은 장난감이 아니라 진짜입니다. " 나는 두 사람에게 탄창을 꺼내 보여주고는 다른 사람들도 깨우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나를 '마쓰 (松)' 방으로 안내했다.

잠든 무고한 사람을 깨워 이래라, 저래라 한 것은 미안하지만 그들을 위협하거나 윽박지르는 일 따윈 결코 한 적이 없다.

얼마 전에 본 '김의 전쟁' 이란 영화에서는 인질들을 향해 총을 겨누는 장면이 나오던데 그건 잘못된 것이다.

나는 그들을 인질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나중에 그 사람들도 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심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의 공판과정에서 증인들이 말한 내용을 보면 알 것이다.

손님 중 한 사람을 시켜 여관 주인을 데려올 때도 엽총을 들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놀랄까봐 그냥 급한 환자가 생겼다고만 말하라고 시켰다.

후지미야 (ふじみ屋) 란 이름의 이 여관은 스마타쿄 온천지대에서는 가장 오래된 곳으로 2층 목조건물인 구관과 신관, 그리고 단층짜리 목조건물 별관으로 돼 있었다.

구관에는 주인집 가족들이 살고 있었으며, 내가 침입해 들어간 곳은 신관이었다.신관 1층에는 '다케' '마쓰' 방, 2층에는 '후지 (藤)' '기리 (桐)' 방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무려 88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했기 때문에 31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여관 구석구석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1층 손님들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 주인집 가족을 포함한 13명의 인질을 '기리' 방에 몰아넣었다.

인질 가운데는 주인집 어린 아이 2명도 포함돼 있었다.

"놀라지 마시오. 난 얼마전 시미즈시에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람을 죽이고 이곳에 왔습니다. 여기서 경찰을 상대로 할 일이 있으니 내일 아침 경찰이 올 때까지만 참아주세요. " 나는 총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어 깊이 사죄한 다음 인질들에게 간략하게 내 사정을 설명하고 1층 현관 옆 전화기 쪽으로 내려가 곧 바로 시미즈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손목시계는 벌써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모시모시 (여보세요) , 니시오상 바꿔주세요.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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