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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29. 최완수 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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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울광화문에서 삼청터널을 지나 성북초등학교 쪽으로 내려가다보면 왼편으로 '간송미술관' 이라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잘 가꿔진 정원과 돌로 된 사자 한쌍이 손님을 맞는다.

한눈에도 오래된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2층짜리 석조건물이 바로 추사 (秋史) 김정희 (金正喜). 겸재 (謙齋) 정선 (鄭敾).단원 (檀園) 김홍도 (金弘道) 등의 국보급 미술품을 비장 (秘藏) 한 곳이자 '최완수 학교' 의 현장이다.

일명 '간송학파' 라고도 불리는 이들 연구집단의 구심점은 물론 33년째 이곳을 지키며 제자들을 길러온 최완수 (崔完秀.56) 연구실장이다.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하다 66년 고 혜곡 (兮谷) 최순우 (崔淳雨.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의 권유로 이 곳에 오게 됐다.

그와 같은 과 (科) 동기인 정옥자 (鄭玉子.57). 이태진 (李泰鎭.56) 두 서울대 교수와 과 후배로 만나 가깝게 지낸 이성규 (李成珪.53) 서울대 교수. 이근수 (李根洙.54) 경기대 교수 등이 그의 학문적 동지다.

또 75년 서울대 국사학과에 첫 강의를 나가면서부터 인연을 맺은 20여명의 제자들이 오늘날 '최완수 학교' 를 지탱하는 든든한 '허리' 가 되고 있다.

이때 강의를 들었던 73학번들이 정병삼 (鄭炳三.45) 숙명여대 교수, 지두환 (池斗煥.46) 국민대 교수, 유봉학 (劉奉學.45) 한신대 교수, 이세영 (李世永.44) 한신대 교수 (이상 한국사) , 김유철 (金裕哲.45) 연세대 교수 (철학) 등 사학계의 중진급 학자들이다.

鄭교수는 강의를 듣기 한해 전인 74년부터 이미 지인의 소개로 간송미술관을 드나들기 시작한 제자 중의 최고참. 그는 "일제 통치 하에서 왜곡된 우리 역사, 특히 당쟁하다 망한 것으로만 배웠던 조선시대를 추사와 겸재의 작품을 예로 들어 평가를 달리했던 점이 너무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며 첫 만남을 '문화적 충격' 으로 회고한다.

이듬해 崔실장이 미대 강의를 나가면서 제자들의 범위가 한층 넓어진다.

현재 우리 미술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천일 (金千一.48) 목포대 교수와 강경구 (姜敬求.47) 경원대 교수.김동선 (金東宣.44) 한성대 교수 등이 주요 멤버다.

특히 이들은 겸재의 진경산수에 담긴 독창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동양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어 평단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론가로는 강관식 (姜寬植.42) 한성대 교수와 오병욱 (吳炳郁.41) 원광대 교수 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태승 (李泰承.42) 용인대 교수는 불화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있다.

조덕현 (曺德鉉.42) 이화여대 교수의 경우 예술적 형상화의 방식은 이 곳 출신답지 않지만 그 내용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 이라는 지향점만은 분명히 읽힌다.

이밖에 전공이 한국사나 미술사는 아니지만 송기형 (宋起炯.45) 건국대 교수 (불문학) 와 조명화 (曺明和.44) 서원대 교수 (중문학) 등이 있으며, 한의사와 국립국악원 대금연주자까지 두루 포진해 '우리 것' 에 대한 관심이 다방면으로 발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84년부터 매달 첫째주 일요일마다 간송미술관의 전신 (前身) 인 '보화각 (보華閣)' 에서 이름을 딴 보화재 (보華齋) 라는 세미나 모임을 갖고, 각자 분야에서 연구한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한다.

'최완수 학교' 가 학문적 이상향으로 삼고 있는 것은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 崔실장은 이때를 가리켜 '진경 (眞景) 시대' 라는, 국사교과서에도 없는 생소한 이름을 붙였다.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이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거치면서 발전적으로 심화돼 당시의 문화예술을 꽃피우게 한 원동력이 됐다" 는 생각이 깔려있는 명명 (命名) 이다.

특히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독창적 화법으로 표현했던 겸재의 진경산수화는 이러한 시대 분위기를 자양분으로 탄생한 걸작이라는 것이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한국사를 문헌자료뿐 아니라 작품을 통해 해석하는 崔실장과 제자들의 독특한 연구 방식을 무기로 하고 있다.

강관식 교수는 " '역사는 집필자에 의해 왜곡될 수 있지만 그림은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증거한다' 는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고 말한다.

이러한 연구방식의 결정체가 지난해 출간된 '진경시대' (돌베개) 1.2권이다.

스승과 제자들이 공동집필한 이 저서는 송강 (松江) 정철 (鄭哲) 부터 서포 (西浦) 김만중 (金萬重). 석봉 (石峯) 한호 (韓濩). 겸재.단원을 거쳐 혜원 (蕙園) 신윤복 (申潤福)에 이르기까지 농익은 문화예술의 면면을 통해 조선후기 전반의 조감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특히 주류 사학계와 배치되는 시각으로 '독창적' 이라는 찬사도 받았지만 일부 '독단적' 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던 그간의 활동 반경을 한 단계 넓히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이렇듯 '진경시대' 발표를 분수령으로 '최완수 학교' 는 이론의 실증화 작업에 계속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집필에 참여했던 지두환 교수가 "과거 사학계에서 우리 비중이 1대 9 정도로 작았다면 90년대 들어서는 3대 7 정도로 커진 것 같다" 고 자평하는 것이나, 崔실장이 "이제 조선시대가 당쟁하다 망했다고 말하는 건 이 바닥에서 촌스러운 소리로 통한다" 고 자신하는 것도 모두 20년 넘는 세월 동안 착실히 쌓아온 이 학교의 기초공사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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