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영화제 폐막…중국 최우수작품·감독상 독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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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성 (性) 을 소재로 한 영화가 유난히 많이 출품됐던 제56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단은 성보다 휴머니즘을 택했다. 그리고 그 휴머니즘 미학을 아시아영화에서 찾았다.

12일 새벽 (한국시간) 폐막된 베니스영화제는 사회성과 휴머니즘이 강조된 중국과 이란 작품들에 최우수 작품상 (황금사자상) 과 심사위원대상, 최우수 감독상 등 3대상을 모두 몰아줬다.

베니스영화제에서 아시아권영화들의 이같은 개가는 사상 처음이다.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은 중국 제5세대 감독의 대표중 한명인 장이모의 '책상서랍 속의 동화' .장 감독은 92년 '귀주 이야기' 에 이어 두번째 그랑프리를 안았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중국 오지마을 한 학교의 어려운 상황을 현실감있게 묘사했다" 며 선정이유를 밝혔다.

이 영화는 디테일한 영상미가 탁월하지만, 교훈적인 결말로 일부에선 '국책 (國策) 영화' 란 비난도 없지 않았다. 지난 5월 칸영화제 경쟁작에 오르지 못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때 장감독은 "그거야 말로 서양인들의 편견" 이라며 비난했다.

최우수감독상 역시 또 한명의 중국출신 장위안 감독이 차지했다. '17세' 를 출품한 장감독은 장이모 등 5세대 감독에 이은 차세대란 뜻에서 '6세대 감독' 으로 불린다.

이번 수상작은 살인 사건으로 인해 헤어졌던 한 가족의 재회를 찡하게 담아냈다.

심사위원대상의 주인공은 최근 유럽 영화작가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어있는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으로 신작 '바람이 우리를 나르네 (The Wind Will Carry Us)' 가 수상작이다.

대표작인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등 그의 전작들이 그렇듯 이 작품 또한 어린이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세상이다.

쿠르드족 마을에 흘러 들어온 일단의 외부인들로 인해 빚어지는 해프닝을 통해 인간관계의 모순을 시적인 영상미로 가득 담아냈다.

올 베니스영화제는 세기말 성담론의 장 (場) 이 될 것이고, 그런 류의 작품중에 수상작이 나오리라 예상됐다.

개막작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 )에서부터 그런 전조가 엿보였다.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에 기대를 걸었던 것도 이 때문. 그러나 결과는, 실험적 형식미보다는 보다 차원높은 휴머니즘 미학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한편 남여주연상은 각각 영국영화 '뒤죽박죽' 의 짐 브로드벤트와 벨기에 영화 '포르노그래픽 정사' 의 나탈리 베이에게 돌아갔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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