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람 사람] "세브란스 병원 세운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우리 조상이 100여 년 전 뿌린 씨앗이 이렇게 큰 열매를 맺은 데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던 5만5000달러를 기부해 1904년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했던 루이스 세브란스(1838~1913)의 후손 루이즈 프랭크(48.사진)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프랭크는 병원 설립에 기여한 미국 선교사 및 의사의 후손 10여 명과 함께 4일 연세대를 방문해 건학 120주년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백주년기념관과 옛 광혜원 터를 돌아보고 세브란스 새 병원 개원식에도 참석했다.

그는 "작은 고조 할아버지가 한국의 병원 설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말을 몇 달 전 전해듣고 놀랍고도 자랑스러웠다"면서 "기억 속에 묻혀버렸던 가족사를 알게 해 주고 이렇게 초청까지 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루이스 세브란스의 아들과 딸은 자식을 낳지 못해 그의 직계 후손은 없다. 프랭크는 루이스 세브란스의 형인 솔론 세브란스의 고손녀다.

연세대 측은 새 병원 개원식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미주 동문회에 편지를 보내 세브란스의 후손을 찾아주도록 요청했다. 세브란스의 고향인 미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근교에서 내과 병원을 운영하는 김충홍(65.연세대 의대 68년 졸업)씨가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솔론 세브란스의 증손녀 베티 알렉산더(78)와 고손녀 프랭크를 찾아냈다. 증손녀는 건강 때문에 먼거리 여행을 할 수 없어 프랭크만 초청에 응했다.

프랭크는 "작은 고조 할아버지의 침대 등 내가 갖고 있는 유품들을 연세대에 기증할 생각"이라며 "앞으로 나흘간 한국의 곳곳을 둘러보고 좋은 추억을 간직한 채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세브란스와 함께 병원 설립을 주도한 올리버 에비슨의 손녀 조이스 에비슨 블랙(80)은 "25년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나 40년까지 서울에서 살았는데 이번에 다시 와보니 옛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당시 전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는데 포승줄에 묶인 죄수들이 함께 타 무서웠다. 길거리에는 거지들이 많았는데 거지가 죽으면 누군가 가서 거적을 씌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선교사들이 집에서 여는 파티에도 일본 경찰 한 명이 꼭 참석했다"면서 "신사참배 압력이 강해지자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일본인들은 전화통에 대고도 절한다, 하면 어떠냐'는 파와 '절대 안된다'는 파로 나뉘었다"고 말했다.

루이스 세브란스는 '석유왕' 록펠러와 함께 세운 스탠더드 석유회사의 대주주 겸 회계담당 이사로 있으면서 많은 자선사업을 했다. 그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만든 '세브란스 펀드'(미국 북장로교회가 관리)는 100년이 넘게 세브란스 병원을 후원하고 있다.

글=박성우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