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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기업 설문조사] '경기 숨통 텄지만 낙관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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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기는 확실히 풀리고 있지만 금리.유가.원자재값 등 불안 요인이 많아 아직 낙관은 이르다' . '인력 채용은 늘리겠지만 임금 인상에는 소극적' . '전망이 불투명해 투자는 조심스럽다' . 본사가 실시한 32개 대기업 (30대 그룹+포철.한국통신)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기업들의 공통된 반응과 주문이다.

가장 확실한 변화는 경기 회복세를 타고 신규 채용을 늘리겠다는 움직임. 이에 따라 얼어붙었던 대졸 채용 시장에 다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그러나 임금은 여전히 동결 내지는 소폭 상승에 그치고 있으며 투자도 내년 이후나 돼야 검토해 보겠다는 반응이다.

우리 경제가 당면한 최대 현안으로는 '기술개발 부진' 을 가장 많이 꼽아 경기 침체와 불안정한 국내외 여건 속에서 기술개발 (R&D)에 대한 투자 위축이 자칫 경쟁력 기반을 약화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 피부에 와 닿는 경기회복 = 경기회복에 대한 질문에 대해 네 군데 중 세 곳 (75%) 이 '확실히 느낀다' 고 응답했다.

'전혀 못 느낀다' 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지난 5월 본지가 실시했던 같은 조사에서 '확실히 느낀다' 는 응답이 절반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눈에 띄게 확산됐음을 알 수 있다.

4분기 전망은 더 확실하다.

무려 84.3%가 '좋아질 것' 이라고 답했다.

◇ 애로사항 = 가장 큰 걱정거리는 비용부담 상승. 경영 애로사항으로 ▶금리 상승 (22개사.복수응답) ▶유가.원자재값 상승 (19) 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

전통적 애로사항이던 ▶노사분규 및 고임금 ▶수출 둔화 ▶환율 불안 등이 후순위로 밀린 것이 눈길을 끈다.

지난 5월에는 수출둔화.노사분규 및 임금.정치 불안의 순으로 응답했었다.

이와 관련, 기업의 요구사항도 달라져 5월에는 수출촉진.노사안정이 주류를 이뤘으나 지금은 금리 안정과 원활한 자금수급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

투자는 내년 이후에나 본격화될 전망이다.

◇ 채용은 늘리되 임금은 유지 = 현대.삼성은 1천명선을 검토 중이고 SK.삼양사는 지난해의 두 배를 뽑을 생각이다.

LG.코오롱.제일제당.동부 등도 50% 안팎씩 늘려잡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계열사별 채용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 16개사가 '계열사별 채용' 을 하기로 했고, 10개사는 그룹 공채 및 계열사별 채용을 병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룹 공채' 방식만을 택한 기업은 1곳뿐이었다.

선단식 경영 해소.계열사별 자율경영 추세를 반영한 새 풍속도다.

입사희망자의 입장에선 그룹뿐 아니라 업종까지 선택해 지원해야 하므로 자신의 적성을 잘 살펴봐야 한다.

'신입사원 채용 때 가장 중시하는 항목' 으로는 ▶인성 (18개사) ▶전공 및 학과 (10) ▶창의력 (2) ▶영어실력 (2) 순으로 응답됐다.

출신 학교.컴퓨터 능력.실무 경험 등은 중시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 임금은 16개사가 동결했거나,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1개사는 '약간 올렸거나 올린다' 고 말했다.

올린 곳도 인상률은 대부분 5% 이하여서 샐러리맨들이 호주머니로 경기회복을 느끼는 것은 내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 주식.부동산은 '오른다' =주가는 낙관적인 전망이 강했다.

연말기준 종합주가지수에 대해 18개사가 1, 000포인트 이상을 예상하는 등 응답기업들의 평균 예상 지수는 1, 009.8포인트였다.

지난 5월 같은 조사 때는 연말 주가가 평균 897포인트로 예상됐었다.

부동산 값도 오를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내년 상반기까지의 부동산 시장에 대해 30개사가 "값이 오를 것" 이라고 예상했고 두곳은 "현상 유지" 라고 말했으며 "내릴 것" 으로 예측한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연말 금리는 지금보다 약간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연말께면 대우사태가 풀릴 것이고 ▶기업마다 구조조정을 하며 빚을 갚으면 시중 자금에 여유가 생길 것이며 ▶설령 금리가 더 오른다 해도 정부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 재벌 개혁 줄다리기 =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대해 '잘 하는 일' (12개사) 이란 평가가 '잘못된 정책' (4개사)에 비해 훨씬 많았다.

나머지 (14개사) 는 중립. 일단 지켜보자는 반응이다.

모기업이 계열사를 잔뜩 거느리는 '선단식 경영' 에 관해선 절반 이상 (54.9%) 이 "없어져야 한다" 고 답했다.

"선단식 경영도 필요하다" 는 주장은 32.3%에 그쳤다.

전문기업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기업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01년 4월 부활 예정인 '출자총액 제한제도' 에 대해 과반수 (53.1%)가 '부활돼선 안된다' 고 주장한 반면 '부활돼야 한다' 는 곳은 28.1%에 머물렀다.

사외이사 확대 방침에 대해서도 46.9%가 반대 입장을 표시했고 찬성은 28.1%에 불과했다.

한 기업관계자는 "재벌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나 어디까지나 기업 자율로 해야 하며, 정부가 다그치면 안된다" 고 말했다.

'속도가 중요하다' 는 정부 입장과는 상반된 것으로 난항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민병관.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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