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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IMF와 자살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캥은 1897년 인간의 자살문제를 최초로 총체 분석한 '자살론' 이란 책을 내놓았다.

그는 이 책에서 자살의 유형을 이타적 (利他的).이기적 (利己的). '아노미' 적 자살로 분류했는데, 그가 처음 공식화한 '아노미적 자살' 은 아직까지도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불안.무력감에서 생기는 심리학에 있어서의 '아노미 현상' 이 사회적 변동기 때 가치관의 붕괴와 함께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데 뒤르캥은 경제문제로 인한 '아노미적 자살' 은 위기만이 아니라 호황인 때에도 상승한다고 보면서 19세기 후반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몇몇 나라의 예를 들었다.

이 무렵의 유럽 국가들은 경제적으로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지만 자살률은 매년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가령 1870년 로마 정복으로 통일의 기초를 닦고, 빠른 경제발전을 보이기 시작한 이탈리아의 경우 그때까지는 1백만명당 26명의 자살률을 기록했으나 71년부터 해마다 늘어 77년에는 40.6명을 기록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경제적 위기가 자살을 증가시킨다면 번영의 위기도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논리다.

사회적으로 중대한 변화가 생겨 '재적응' 이 필요하게 되면 벼락부자가 되건 재난을 당하건 자살의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집합적인 질서가 흔들리는 데서 오는 '균형의 상실' 때문이라고 보았다.

특히 경제위기의 경우에는 필요와 욕구를 감소시키고 제한해야 하며 더욱 자제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따름이다.

막상 하루아침에 도산해 살 길이 막막해지면 누구나 자살을 생각하는 게 정한 이치다.

그래서 요즘에는 경제문제로 인한 자살을 '경제불쾌지수' 와의 동반관계로 보는 견해가 있다.

물가상승률과 완전실업률을 합한 '경제불쾌지수' 가 높아질수록 자살률도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수치 (數値) 만이 아니라 체감 (體感) 지수로 보기도 한다.

문제는 자살이 모든 문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라는 데 있다.

당사자로서는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을 수밖에 없으나 뒤에 남은 문제는 항상 더 복잡하게 마련이다.

지난 한햇동안 자살한 사람은 8천5백여명으로 97년에 비해 2천5백여명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IMF쇼크 탓이다.

그런데도 나라는 시끄럽기만 하고 전망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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