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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 바란다]'정부탓만 말고 언론 제역할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재벌개혁은 시대적 과제인데 신문이 자문교수단의 일부 발언을 문제 삼아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결국 딴지를 건 셈 아닌가. ' '새로운 사실은 전혀 밝혀내지 못한 청문회를 대서특필하는 것은 지면 낭비다. '

지난달 31일 오후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 8월 독자위원회에서는 지난 한달 동안의 본지 보도내용과 편집방향에 대해 서릿발 같은 질타가 이어졌다.

두시간 동안 진행된 이 회의에는 신구식 (申坵植) 위원장 (무역협회 차장) 을 비롯한 6명의 독자위원과 본사 문병호 (文炳晧) 편집국장대리, 이수근 (李秀根) 논설위원, 김두우 (金斗宇) 정치부 차장, 양재찬 (梁在燦) 경제부 차장, 이상언 (李相彦) 사회부 차장, 허의도 (許義道) 문화부 차장이 참석했다.

▶신구식 = 8월 초까지 연재된 '신지역주의' 기획특집 기사를 보면서 신문이 맨날 정부 탓, 지식인 탓, 국민 탓만 했지 언론 자체의 역할에 대한 분석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JP해임안 보도와 관련해서는 여당의 집단퇴장에 대한 비판기사가 전혀 없었다.

특히 18일자는 반부패특위 구성 등 정부의 부패척결 작업에 대한 기사를 잔뜩 실으면서 막상 JP의 '오리발' 기사는 가십으로 조그맣게 취급했다.

공교롭게 같은날 보도된 이 두 기사를 묶었으면 흥미있었을 것 같다.

JP의 1백억원 비자금 기사도 그것이 미칠 영향에 비해 너무 작게 다뤘다.

해설까지 실은 다른 신문과 비교됐다.

또 다른 신문들이 김종필 총리와 김용환 의원의 화해가능성을 대부분 낮게 보도했음에도 유독 중앙일보는 가능성이 큰 것으로 써 의아했다.

어느 회사가 컴퓨터 실력을 기준삼아 상무를 과장으로 강등하고 대신 과장을 상무로 승진시켰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과장은 2급이고 상무는 1급이었다.

그 정도 차이라면 과장 기사 아닌가.

▶김창남 (金昌南) 성공회대 교수 = 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대통령 자문교수인 김태동.황태연씨의 재벌개혁 관련 발언에 대해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집중 포화를 가했다.

한 기명 칼럼에서는 자문교수들의 '인적 청산론' 을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4인방의 발언을 연상케 하는 언치 (言治)' 라고 비판했다.

또 대통령의 재벌개혁 관련 발언을 '사회주의적 발상' 이라고 비난한 한나라당의 입장을 크게 실었다.

결국 정부는 '재벌해체는 아니다' 며 뒷걸음질했다.

신문의 이런 태도야말로 오히려 '언치' 아닌가.

재벌개혁은 시대적 과제임에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다.

▶오양호 (吳亮鎬) 변호사 = 세제개혁과 관련한 기사에서 중산층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에 너무 가혹하게 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했는데 적절치 않다는 느낌이다.

중앙일보가 중산층과 기업을 위한 신문이라면 이같은 보도태도는 모순이 아닌가.

또 청문회 기사를 엄청나게 싣더니 결국은 '밝혀진 게 없으니 특검제를 도입해야 한다' 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렇게 간단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금융감독위원회의 대한생명 감자 (減資) 명령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은 기왕 소개할 바에야 일반 독자들도 알기 쉽게 썼으면 했다.

한전 민영화는 전력사업 구조개편이 핵심 쟁점인데 단순히 해외매각에만 초점을 맞춰 아쉬웠다.

▶조정하 (曺정夏) 여성민우회 미디어 사무국장 = 사실 청문회 기사는 지면을 도배했다고 할 정도로 많이 썼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지난 봄에 다 나온 얘기를 되풀이한 데 불과하다는 느낌이었다.

국가보안법 개정문제에 관한 시론에서 좀더 진보적인 입장이 아쉬웠고, '총장 직선제 바꿀 때 됐다' 고 지적한 사설은 수긍하기가 어려웠다.

총장 직선제의 장.단점에 대한 구체적 논리전개가 미흡했다.

'몰래 카메라' 의 심각성을 지적한 기획기사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잘 드러냈지만 다소 선정적인 경향을 보였고, 대안에 대한 진지한 고려도 부족했다.

비아그라 판매시기를 여권의 총선전략과 연결시킨 '왈순아지매' 는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신문사들이 적자에 시달려 언론의 자유가 제약받는다는 '복거일 칼럼' 은 신문개혁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정승혜 (鄭承慧) 주부 = 문화면에 실린 연극배우 윤석화씨의 어깨를 드러낸 사진도 선정적이었다.

기사내용과 별 관계가 없는 그런 사진을 꼭 써야 했는지 의문이다.

부모의 종교 때문에 병원엘 못 가던 신애양이 수술을 받게 됐다는 사회면 기사를 봤는데 그전에 신애양 얘기를 중앙일보에서 못본 것 같다.

그렇다면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므로 자초지종을 간단하게나마 써줘야 하는 것 아닌가.

월요일자에는 전날이 휴일인 관계로 환율.금리 등 주요 경제지표가 안나오는데 전주 주간동향을 실어주면 도움이 되겠다.

8월 27일자에는 미국 달러가 1년내 40%나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가 국제면에 실렸는데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언급이 없었다.

▶이정균 (李貞均) 일산성신 초등학교 교사 = 씨랜드 화재사고로 자식을 잃은 한 부모가 이민을 간다는 기사를 매우 가슴 아프게 읽었다.

하지만 이 기사가 일과성으로 끝나는 것 같아 아쉽다.

총리를 만난 것도 정가접속으로 가볍게 취급하고 말았다.

이런 사람을 월요인터뷰란에 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수해보도는 왜 매년 판에 박은 듯 똑같은지 모르겠다.

거의 모든 신문이 그랬다.

또 신문사들이 경쟁적으로 성금 관련기사를 크게 취급했지만 막상 성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김창남 = 수재의연금을 1백만원 이상 낸 사람은 큰 활자에다 사진까지 실어줬다.

이번에도 역시 정치인의 '금일봉' 관행은 없어지지 않았다.

중앙 마라톤에 대한 대대적인 지면할애도 문제가 있다.

지면은 독자의 관심도에 따라 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작 중요한 통합방송법과 교육법 개정문제에 관한 분석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신구식 = 미국이 중국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연장한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왜 미국은 중국에만 최혜국 대우를 하는지 등등 세부적인 설명이 전혀 없었다.

8월 3일자 다른 신문들이 일제히 '삼성자동차 부채 추가출연 거부' 를 비중있게 다뤘음에도 중앙일보는 이를 보도하지 않고, 대신 '삼성전자가 시가총액에서 한국전력을 제치고 1위로 올랐다' 는 것을 크게 다뤘다.

▶중앙일보 = 수재의연금을 액수에 따라 다르게 싣는 방식은 지난해에 폐지됐다가 다시 쓰고 있다.

보도방식을 바꾸니 모금이 잘 안돼 불가피하게 부활했다.

정치인들의 '금일봉' 관행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했다.

본사 마라톤 행사에 지면을 지나치게 배정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지만 많은 참여를 유도해 국제 마라톤대회로 키우기 위해 그렇게 했다.

중앙일보는 재벌개혁에 반대하지 않는다.

법과 시장경제 원칙 아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 재벌개혁은 경제논리로 접근해야지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되면 위험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다른 신문들은 청문회를 하루 이틀 지켜본 뒤 곧바로 청문회 무용론 등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는 저속한 저널리즘의 표본이다.

우리는 이번 청문회가 검찰의 수사기록 미공개 등 제도적인 문제 때문에 진상규명에 실패했다고 보고 제도개선을 강조했다.

JP 비자금 문제는 이미 YS정부 시절에도 나온 얘기인데, 그때와 사실관계에 있어서 하나도 진전된 게 없어서 크게 다루지 않았다.

우리는 재벌개혁이나 삼성차 문제를 공정하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하고 기사로 인해 개별기업이 부당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신경쓰고 있다.

대한생명 판결 등에 대해 설명이 미흡하다고 하는데 이미 다 보도됐던 것을 일간지에서 매번 자세히 다루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정리 =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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