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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암행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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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어두운 길을 걷는 메신저(The Messenger on the Dark Path). 그들은 왕으로부터 봉해진 명령서를 받는데 도성 밖에 나갈 때까지 뜯어보아서는 안 된다. 자택에도 들르지 못하고 즉시 목적지를 향해 떠나야 한다. 완벽하게 변장하고 비밀히 여행하면서 민심과 관리의 소행을 살핀다.’

1882년 윌리엄 그리피스가 『은자의 나라, 조선』에서 묘사한 ‘그들’. 바로 암행어사다.

암행어사는 조선만의 독특한 감찰제도였다. 암행어사들은 마패와 함께 ‘유척’이라는 자를 가지고 다녔다. 죄인을 치는 곤장이나 쌀을 계량하는 됫박의 크기 등을 재기 위해서다. 형벌과 세금 징수가 공평한지 꼼꼼히 살핀 것이다. (이성무, 『조선의 부정부패 어떻게 막았을까』)

추사 김정희도 ‘명어사’였다. 충남 대산엔 그가 어사 시절 백성들의 세금을 덜어준 일을 기린 ‘영세불망비’가 있다. 추사는 전·현직 수령 10여 명의 비리도 파헤쳤다. 막강한 권세를 자랑하던 안동 김씨 집안 사람까지 잡아넣었다. 출세길이 막힐 것을 각오한 것이다. 퇴계 이황, 정암 조광조, 다산 정약용, 서포 김만중도 암행어사로 활약했다. (임병준, 『조선의 암행어사』)

암행어사 제도는 조선과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대한민국 역시 건국과 동시에 독특한 감찰제도를 만들었다. 국회에서 실시하는 국정감사다. 특정 사안에 대한 국정 조사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국정 전반을 감사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회뿐이다. 1950년대엔 국회의원이 마치 암행어사 마패처럼 국회의원증을 가지고 현장 감사를 나갔다. 임금의 밀사가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뽑은 의원이 대낮에 당당히 감찰을 하게 된 것이다.

국정감사는 강력한 국정 통제 수단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국감은 유신헌법이 제정될 때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폐지됐다. 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에야 부활된다. 88년 13대 국회에서 국감이 다시 실시됐다. 폐지된 지 16년 만이었다. 삼청교육대,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 80년 언론통폐합 등이 국감을 달궜다.

국감이 부활한 지 22년. 지금 국회에선 국감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부정부패를 밝히려는 노력보다 치열한 정치 공방이 넘쳐난다. ‘신(新)암행어사’라도 지향하는 것일까. 그리피스의 직역처럼 ‘어두운 길을 걷는 메신저’, 여야의 어두운 정략적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 되려는 건가. 가을 햇살이 이렇게나 화창한데.

구희령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