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쏟아지는 '욕망'관련서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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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욕망은 인간의 원형질. 지난 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대립구도 속에선 '소비' 라는 단어로 통하던 것이 신좌파적 시각에서 '욕망' 으로 바뀌었다.

그게 최근 문화연구적 관점에서 주목받는 개념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철학적 의미의 욕망과 영화.가요 등에 자리잡고 있는 대중문화적 욕망은 그리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요즘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욕망 관련서들, 무엇을 담고 있나.

◇ 전경갑 교수 '욕망의 통제와 탈주'

삶의 모든 영역에 경제논리가 침투한 시대, 자본의 욕망이 우리를 포획하는 이른바 '욕망의 시대' 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과연 그 욕망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부경대 전경갑 (철학) 교수가 펴낸 '욕망의 통제와 탈주' (한길사.1만원) 는 스피노자.니체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에 이르는 철학자 11명의 욕망이론을 학술적 관점에서 다뤄 욕망의 계보가 한눈에 들어온다.

먼저 스피노자는 욕망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한다.

인간은 어떤 것을 좋아해서 그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하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논리로 인간에게 내재한 무의식적 욕망을 처음으로 짚어냈다.

프로이트는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정신을 결정하는 요소가 이성보다는 욕망이고 의식적 사유보다는 무의식적 충동인 점을 강조, 새로운 인간이해의 지평을 열어 놓았다.

프로이트의 분석을 빌려 라캉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원초적 욕구는 의식의 이면으로 억압돼 무의식적 욕망을 형성한다는 언어학적 욕망이론으로 맥을 이어간다.

이같이 철학자들을 거치며 흘러내려온 욕망이론은 들뢰즈와 가타리에서 현대적 의미의 가닥을 잡는다.

스피노자 이래 다양한 철학적 이론을 원용해 체계화한 들뢰즈와 가타리의 욕망이론은 자본주의를 파시즘에 비유할 만큼 비판적이지만 자본주의 특유의 역동에 따라 해방된 욕망의 에너지를 더 나은 삶에 대한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화장이 갈수록 진해지는 세태를 대학가의 은어로 1학년은 단장, 2학년은 화장, 3학년은 변장, 4학년은 위장이라고 하는데 이는 여성의 얼굴이 욕망에 점령된 상징적 사례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는 여성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는 게 들뢰즈와 가타리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욕망을 부추기는 주체가 선전모델도 방송국도 아니며 이들은 순진한 역할대행자들일 뿐. 진정한 주체는 자본주의의 생리에 있다고 본다.

결국 그들의 욕망이론은 자본주의 논리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이 의식적으로 모여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어차피 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운 만큼 해방된 욕망의 에너지 즉 무의식적 욕망의 열정에서 해방의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해답을 내놓고 있다.

여기서 해방된 욕망의 에너지란 인간이 사회 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한 상황들이 복합돼 나타나는 힘을 말한다.

서울대 김상환 (철학) 교수는 "디지털과 가상현실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욕망을 이론적으로 설득력 있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이들의 철학" 이라고 말한다.

이밖에 라캉과 현대정신분석학회가 펴낸 '우리 시대의 욕망읽기' (문예출판사.1만원) , 유지나 교수 외 10여명의 필자들이 쓴 '욕망 그리고 도시와 문화' (호영.8천원) 그리고 현대인의 왜곡된 욕망을 다룬 '21세기의 욕망' (오히라 겐 지음.푸른숲.5천8백원) 도 욕망의 현대적 의미와 철학에서 말하는 욕망이론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관련서들이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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