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이 여기에 들어 있어요.”
간송미술관 최완수 학예연구실장이 ‘겸재 정선 연구 40년’을 결산하는 책 『겸재 정선』(현암사·전3권)을 펴냈다. 그는 “겸재를 만난 건 숙명이었다”고 했다. [최승식 기자]
◆겸재 연구 40년 총 결산=그에 따르면 겸재 정선(1676~1759)은 “진경산수화라는 우리 고유 회화 양식을 창안해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데 성공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다.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위창 오세창(1864~1953)이었지만 널리 대중화 시킨 이는 최완수씨다. 겸재 연구의 싹을 틔운 것도 그였고 그 꽃을 피운 것도 그다. 겸재와 그는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밀착돼 있다.
1971년 간송미술관 정기기획전 제1회 전시회로 ‘겸재전’이 개최된 이래 모두 11차례의 겸재 관련 전시가 그의 주관 아래 열렸다. 어느새 ‘진경산수’라는 용어는 겸재를 넘어 최완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을 정도다.
이번 책은 200자 원고지 3673매 분량의 방대한 노작이다. 겸재의 그림 도판 206매가 포함됐다.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겸재 작품을 거의 다 모아 연대순으로 배치했다. 겸재 서거 250주년을 맞는 금년에 일단락지어야 한다는 의식도 작용했다. 교정을 18번 보았다고 한다. 애정이 그만큼 녹아있다는 얘기다. 각종 문집과 『승정원일기』 등을 새롭게 점검하여 겸재 관련 내용을 가려 뽑아 수록했다. 겸재 연보를 당시 주요 사건과 함께 꼼꼼하게 정리해놓은 것도 돋보인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처럼 평생 겸재와 씨름하게 한 것일까.
겸재 정선 ‘풍악내산총람(楓岳內山總覽)’, 73.8㎝X100.8㎝, 1741년, 간송미술관 소장. 겸재 정선의 작품 가운데 최완수씨가 특별히 좋아하는 그림 가운데 하나다.
“조선왕조 오백년 문화사 중 그 절정기를 이루는 진경시대를 미술사로 조명해 그 영광의 현장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야만 한다는 당위성에 도달하게 되었죠. 그러기 위해선 진경문화를 주도한 겸재 정선의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조선의 문화가 결코 형편없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평생 증명해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사진은 겸재 정선 ‘북원기로회도(北園耆老會圖·일부)’, 1718년, 손창근 소장. 최완수씨는 “조선 그림에 갓 쓰고 도포 입은 조선인이 등장하는 것은 겸재 이전의 그림에선 보지 못했다”며 “풍속화의 시작도 겸재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짊어진 시대의 짐을 내려놓아도 되는 것일까. 청년 시절 그의 꿈은 이뤄진 것인가. 그는 담담히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겸재와 함께 했던 40년 세월… 행복했고, 영광스러웠습니다.”
겸재 연구를 일단락 지은 그는 앞으로 추사 김정희 연구의 총결산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간송미술관의 가을 정기전시회도 그의 몫이다. 올 가을 정기전은 18일 개막한다.
배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