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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 주범 ‘뒷금’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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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내 금값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7일 귀금속판매업중앙회에 따르면 24k 금 3.75g(한 돈)의 소매 가격은 17만8000원에 이른다. 올 초엔 20만원을 넘기도 했다. 웬만한 투자자도 쫓아가기 힘들 정도다. 돌 잔치에 가면서 금 반지를 들고 가는 건 옛날이야기가 됐다.

쫓아가기 힘든 건 금값만이 아니다. 금을 이용한 탈세도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국세청의 추격 속도가 빨라졌지만, 탈세와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모양새다.

◆금 수출국, 한국=인천공항세관은 지난 8월 금을 밀수출한 혐의로 김모(49)씨를 구속했다.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간 뒷골목에서 사모은 금 210억원어치를 50억원으로 신고하고 일본에 팔아 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국적인 열아홉 살짜리 동포를 운반책으로 활용했다. 이런 금 밀수출은 2007년까지만 해도 단 한 건도 적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엔 52건, 올해 상반기엔 7건이 단속됐다.

밀수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수출도 확 늘었다. 상반기 전체 금 수출은 15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142% 늘었다. 무게로 따지면 52t에 이른다. 우리나라 금광에서 채굴되는 금은 한 해 150㎏ 안팎이다. 대단한 금 생산국도 아니면서 금 수출이 늘어난 것은 국내 수요가 줄고, 국제 시세는 높다 보니 국내에서 쓰던 금을 모아 가공해서 수출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세금 탈루도 생긴다. 세금을 제대로 내면 약간의 시세 차익만 얻을 수 있지만, 안 내면 한 돈에 1만원 이상을 남길 수 있어서다. 이렇게 은근슬쩍 거래되는 금을 ‘뒷금’, 정상 유통되는 금은 ‘앞금’이라 부른다.

◆국세청의 추격=올해 상반기 조세범으로 국세청 조사를 받은 161곳 중 추징세액이 가장 많았던 업체는 금괴 도매업을 하는 법인이다. 303억원이 추징됐다. 추징액 상위 5개 업체 중 3개는 금과 비철금속 관련 업체다. 2006년엔 금괴 관련 추징세액이 5000억원이 넘었다.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금 시장이 탈세 천국으로 불릴 정도”라고 지적했다.

국세청도 추격의 고삐를 당겼다. 지난해 7월부터 금에 대해선 부가세 납부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다. 부가세는 보통 물건을 판 업체가 내지만, 금은 물건을 산 업체가 내도록 하고 있다. 세금은 반드시 신한은행의 금거래 계좌에 예치해야만 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매입자 납부 제도가 도입되면서 부가세를 떼먹고 잠적하는 ‘폭탄업체’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의 연간 금 수요 추정량은 적게는 40t, 많게는 130t에 이른다. 정부도 제대로 파악을 못할 정도로 금 유통시장이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금 거래소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가시화된 계획은 없다. 조세전문 변호사인 고성춘씨는 “요즘은 금 제품뿐 아니라 금이 들어간 기계 부속품 등을 통해 세금을 빼먹는 경우가 많다”며 “금 관련 탈세는 단순한 탈세가 아니라 국부 유출이어서 더 문제”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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