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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조소와의 새로운 만남-'한국근대미술…보는 눈'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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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현존 작품의 절대 수 부족과 회화 부문에 치우친 미술 연구자들의 관심 탓에 일반에 알려질 기회가 거의 없었던 우리 근대 조소 (彫塑 : 조각과 소조, 깎는 것과 붙이는 것 모두를 포괄하는 용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24일부터 10월 3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열리는 '한국근대미술 : 조소 - 근대를 보는 눈' 전은 1900년대부터 약 60여년 간에 걸친 우리 근대 조소사를 한 자리에 정리하는 야심찬 기획이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조각가 김복진의 '미륵불' (청동 모형) 등 지금까지 일반 전시된 적이 없는 작품 17점이 소개돼 미술학도들의 학구열을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흔히 미술사가들은 근대 조소의 출발을 1925년 도쿄미술학교로 유학을 갔던 김복진 (1901~40) 으로 본다.

이번 전시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그렇다면 '근대 조소를 낳은 어머니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그때까지 전통 조각의 핵심을 이루던 것은 불교 조각과 능묘석물 (陵墓石物) .능묘석물이란 사후에도 신하가 왕을 섬긴다는 개념으로 능에 장식하는 석상을 말한다.

조선시대 불교 탄압과 더불어 쇠퇴하기 시작한 조소 예술은 일제 강점기에는 거의 그 맥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몰락한다.

그러나 이러한 암흑기에도 근대 조소라는 '아기' 를 잉태할 만한 불씨가 있었다. 바로 이번 전시에서 사진 자료로 소개되는 1919년과 26년에 만들어진 고종.순종 두 황제 왕릉의 능묘석물과 1905년 부산 범어사가 제작한 나한상이다.

정준모 학예연구실장은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강화시킨 조소 기법이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했음을 밝히게 된 것은 이번 전시의 큰 성과" 라고 자평했다.

김복진으로부터 시작된 근대 조소는 구본웅.김만술.김종영.윤효중.이국전 등과 세대를 바꿔 권진규. 김세중. 김영중. 김정숙. 민복진. 송영수. 윤영자. 전뢰진. 차근호 등으로 이어진다.

초기에는 두상.흉상.전신상 등 인체 조소가 주를 이루다 50년대 접어들면서 점점 재료나 기법 면에서 정신성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51년 베니스 유네스코 예술가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했던 윤효중의 '약진' (63년) '합창A' '합창B' (58년) 등과 51세의 나이로 자살한 권진규의 '홍자' (68년) '여인좌상' (68년) '말과 소년' (65년) 등이 그것. 모두 처음으로 전시에 나온 작품이며, 권진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지원의 얼굴' 도 함께 출품돼 눈길을 끈다.

근대라는 시대적 특성 때문에 우성 김종영의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비구상 계열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현대 조각의 세련되고 매끈한 감성에 길들여진 고정관념을 버리고 우리 근대미술사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조소 예술을 감상한다는 생각으로 관람한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자리가 될 듯 싶다. 02 - 503 - 7744.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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