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음악으로 그린 '청춘스케치'-새영화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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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새 영화 '질주' (감독 이상인) 는 섣불리 주인공들의 영웅화를 부추겨 이를 상품화하려는 요즘의 몇몇 '청춘영화' 들과 구별되는 요소들을 고루 갖췄다. 때문에 젊음을 묘사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 영화로 봐도 손색이 없다.

'질주' 는 겉으로만 양아치 행세를 하는 '상진' (이민우) 과 여성로커 '바람' (남상아) 등 20대 '청춘 4인방' 이 엮는 일상에 대한 탐구다.

각기 고민에 빠진 채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 식 성장통을 앓는 이들의 생활상이 가감 혹은 미화 없이 그려진다.

운 좋게 근사한 여대생을 꾀어 스포츠카를 몰고 해변을 달리고 싶어하는 상진의 일장춘몽 (一場春夢) 같은 게 그런 것이다.

영화는 초반 한 다가구 주택에서 '한지붕 네가족' 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골고루 포커스를 준다.

이런 분절된 '설정쇼트' 는 다소 지루하지만 사실 묘사에는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이들은 서로 헤쳐 모여를 하며 사랑과 섹스, 돈과 권력, 빈부 (貧富) , 선과 위선, 예술혼 등에 대한 고뇌를 드러낸다.

그런 와중에 나름대로의 해법을 찾아 각기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게 이 영화의 큰 미덕이다.

'질주' 는 13억원대의 저예산 영화에 속한다. 마치 '전가 (傳家) 의 보도 (寶刀)' 인양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활용되는 컴퓨터 그래픽 (CG) 등 테크노의 도움 대신 탄탄한 시나리오와 과욕을 부리지 않은 풋풋한 연출력, 비스타들의 하모니 연기로 승부수를 던졌다.

'B셔터 촬영' (셔터를 열어놓고 찍어 급박한 느낌을 주는 촬영술) 등 일견 기교가 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차분한 정공법이 돋보인다. 여러 신인 연기자 중 '오렌지족' 김승현의 연기는 발군이다.

젊은이들의 자유와 해방의 상징기재로 쓰인 록음악의 대변자이자 실제 여성 로커로 활동하는 남상아의 독특한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다음달 열리는 캐나다 밴쿠버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28일 개봉.

작품성★★★ 오락성★★★

*★5개 만점,☆은 반점 (평가 : 중앙일보 영화팀)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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